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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20년(1796)

다음 해(1796)에 정리자(整理字) 30여 만 글자를 주조하여 규영신부(奎瀛新府)에 보관하였다. 금천(金川) 이남면(二南面)과 장단(長湍) 송서면(松西面) 및 백치진(白峙鎭)을 송도(松都, 개성)에 이속(移屬)하였다. 고(故) 만호(萬戶) 정운(鄭運)이 임진왜란 때 몰운대(沒雲臺)에서 순국하였고, 이순신(李舜臣)을 권기(勸起)한 공이 있었기 때문에 병조 판서(兵曹參判)로 추증하였다. 고 참판(參判) 양대박(梁大樸)은 판중추(判中樞)에 추증하였고, 그 아들 태상 정(太常正) 양경운(梁慶運)은 관계(官階)를 한 등급 올려 주었으며, 그 마을을 정려(旌閭)하며 ‘부자충의지문(父子忠義之門)’이라 하였다. 양대박은 의병장(義兵將)으로 임진왜란 때 순국하였고, 양경운은 혼조(昏朝)【광해(光海)】에서 절의를 세운 자이다. 문정공(文靖公) 김인후(金麟厚)를 문묘(文廟)에 종향(從享)하시며, “성리(性理)를 천명하고 [도의] 근원을 훤히 알고 있어 그의 시에 ‘하늘과 땅 그 사이에 두 사람이 있으니, 중니(仲尼, 공자(孔子))가 원기라면 자양(紫陽, 주자(朱子))은 진수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를 보면 그의 학식이 다른 이들에 비해 월등하다는 것을 알 만하다.”라고 하시고, 시호를 ‘문정(文正)’으로 고쳐 주셨다. 사옹원(司甕院)의 분사(分司)를 광주(廣州)에 설치하여 자기(甆器)를 굽게 하셨는데, 그 모양이 옥처럼 깨끗하고 빛나는 것을 갑번(甲燔)1)왕실에 바치는 도자기로 품질이 특제(特製) 다음 가는 것.이라 하고, 재물의 낭비를 금지하였다. 대신과 각신(閣臣)을 이문원(摛文院, 역대 임금과 관련된 문서 등을 보관하는 곳)으로 불러 보셨다. 원자(元子)에게 명하여 여러 대신에게 절하게 한 후 무릎 꿇고 『대학(大學)』을 읽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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