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국조사
  • 광해군(光海君)-순종(純宗)
  • 정조조(正祖朝)
  • 정조 24년(1800)

정조 24년(1800)

24년(1800)에 왕께서 현륭원(顯隆園)에 친히 제사하시고 돌아오시는 길에 시를 지으셨다. 그 시에 이르기를, ‘밤을 새운 화성 땅 돌아보면 멀기만 하여, 지지대에 서서 자꾸 또 머뭇거리네.’라고 하였다. 이조 판서(吏曹判書) 이만수(李晩秀)가 상소를 올렸는데, 그 대략적인 내용은 ‘신하가 임금을 섬길 때 자기가 맡은 직(職)을 다하는 것이 충(忠)이니, 능히 사양하는 아름다움이 의(義)의 올바름은 아니다.’라고 하고, 인조(仁祖) 때 이귀(李貴)가 판서[吏判]를 스스로 추천했던 것을 인용하여 뒷받침하였다. 수찬(修撰) 김이재(金履載)가 상소를 올려 논척하되, 이 말이 염치의 훼손을 훈치(訓致)한다고 하였다. 왕께서 못된 풍습을 바로 잡는다는 이유로 김이재를 투계(投界)하셨다.

여름 5월 그믐날 왕께서 경연 자리에서 [김이재를 귀양 보낸 이유를 설명하시고] “나의 한 조각 애절한 마음은 오로지 저들의 더러운 습속을 전부 새롭게 만드는 데 있다.”고 하셨다.

여름 6월 28일 기묘(己卯)에 왕께서 승하하셨다. 왕세자(王世子)가 인정문(仁政門)에서 즉위하시고 [선왕을] 수원(水原) 건릉(健陵)【뒤에 후에 융릉(隆陵) 서강(西岡)으로 옮김.】에 장사하셨다. 대왕대비(大王大妃)【정조(正祖)의 황후(皇后) 김씨(金氏)】가 발을 내리시고 함께 정치를 들으셨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