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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 12년(1812)

다음 해(1812) 봄 1월에 적이 정주성(定州城)에 들어가 병사를 나누어 서쪽을 빼앗았는데, 선천 부사(宣川府使) 김익순(金益淳)과 이장겸(李章謙)은 항복하고, 정경행(鄭敬行)과 정성한(鄭聖翰)은 그들을 따라 배반하니 청천강 이북의 여러 고을 및 산성들이 적들의 소굴이 되었다. 이후 적들은 박천(博川)과 송림(松林)의 포구(浦口)를 차지하고 모여 안주(安州)를 침범하려고 하였다. 이때 안주 목사(安州牧使) 조종영(趙鐘永)이 안주성을 굳게 지켰고, 병사(兵使) 이해우(李海愚)는 우후(虞候) 이해승(李海昇), 함종 부사(咸從府使) 윤욱렬(尹郁烈), 순천 군수(順川郡守) 오치수(吳致壽), 곽산 군수(郭山郡守) 이호식(李祜植)1)원문에는 이호식(李浩植)으로 되어 있으나, 이호식(李祜植)으로 바로잡는다.을 보내 군을 이끌고 나아가 공격하게 하니 적이 크게 패하여 정주성으로 도망갔다. 정시(鄭蓍)를 병조 판서(兵曹判書)로, 그 아비 정로(鄭魯)는 아경(亞卿)으로 추증하였다. 윤욱렬, 이호식2)원문에는 이우식(李祐植)으로 되어 있으나, 이호식(李祜植)으로 바로잡는다. 등이 곽산과 선천을 수복하고 의주 부윤(義州府尹) 조흥진(趙興鎭)은 의병장(義兵將) 김견신(金見臣)과 영군장(領軍將) 허항(許沆)을 보내 용천(龍川)과 철산(鐵山)을 비롯한 여러 산성을 모두 수복하였는데, 유독 정주의 적들만이 성을 차지하고 나오지 않고 있었다. 순무 중군(巡撫中軍) 박기풍(朴基豊)이 성밖 달천포(㺚川浦)에 진을 치고 성을 공격하였는데 소모장(召募將) 제경욱(諸景彧)과 전(前) 봉장(鋒將) 김대택(金大宅)이 육박하여 앞장서서 성에 오르다가 모두 탄환에 맞아 죽었다. 박기풍은 적들에게 패했으므로 그 직을 삭탈한 다음 유효원(柳孝源)으로 대신하게 하였다. 영변(寧邊)의 군사 양동(梁同)이 곽산의 전투에서 적에게 잡혔는데, 굴복하지 않자 적이 칼로 세 번 그의 목을 찔러 땅에 쓰러뜨렸다. 적이 [그가 죽은 줄 알고는] 버리고 갔는데, 양동이 거의 죽었다가 소생하였다. [이 사실을 듣고] 특별히 변장(邊將)에 제수하였다. 훈련도감(訓練都監) 군사 이장갑(李長甲)은 덕산(德山)의 승호 포수(陞戶砲手)로 자원하여 정벌에 따라 나섰다. 성을 공격하는 날 앞장서서 먼저 성에 오르다가 탄환에 맞아 부상을 당했고, 남문(南門)의 싸움에서 또 하루 종일 힘껏 싸우다가 죽었다. 그에게 변장을 증직하라고 명하였다. 적이 성을 나와 목책(木柵)을 위협[劫寨]하였는데, 허항이 적진으로 돌입하면서 손에 든 칼로 적을 쳐서 죽이다 창에 찔려 결국 사망하였다. [왕께서 들으시고] 명하여 통제사(統制使)로 증직하셨다. 허항의 처 김씨(金氏)가 따라 죽었기 때문에 그 마을에 정문을 세울 것을 명하셨다. 이때 웅악 부도통(熊岳副都統)과 봉황성 수위(鳳凰城守尉) 등이 명(明) 황제의 지(旨)로 군사들을 거느리고 중강(中江)에 이르러 관군을 응원하였다.

여름 4월에 유효원이 동성(東城)에 공격용 흙산을 쌓아 가린 후 북성(北城)에 땅을 파서 화약을 묻어 두었다가 옆의 구멍으로부터 불을 붙이게 하였다. 잠시 후에 화약이 폭발하면서 성이 무너지자 대군이 성에 들어갈 수 있었다, 홍경래는 탄환에 맞아 죽었으므로 참수하여 상자에 담아 서울로 올려 보냈다. 순무 중군 유효원의 군사가 돌아왔다. 살육(殺戮)이 과다(過多)하였기 때문에 그 직을 혁파하였다. 이요헌(李堯憲)은 정2품 품계에 초자(超資)하였다. 전 장령(掌令) 한호운(韓浩運)은 정주 사람인데 적들을 꾸짖다 죽었고, 백경한(白慶翰)은 의병을 일으켜 관군을 맞이하려다가 죽었다. 이들 모두에게 아경을 증직하였다. 안주 사람 임지환(林之煥)은 충민공(忠愍公) 임경업(林慶業)의 후손이다. 그는 자원하여 싸움에 나가서 비밀 격서를 가지고 군사를 모집하다가 적에게 붙잡혔다. 임지환이 적들을 꾸짖으면서, “나는 충신의 후손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적이 임지환의 목을 베라고 하니, 임지환은 하늘의 해를 바라보아야 한다면서 드러누운 채 굴복하지 않았다. [왕께서 들으시고] 병조 판서(兵曹判書) 종2품 직책을 추증하라 명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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