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해(1813)에 의병장(義兵將) 김견신(金見臣), 최신엽(崔信燁), 이경신(李敬身), 송지렴(宋之濂), 현인복(玄仁福) 등에게 모두 관직을 제수하셨다. 문임(文任)에게 명하여 정주(定州)에서 전사한 장사(將士)의 기적비문(紀蹟碑文)을 짓게 하고, 평양(平壤)의 민충단(愍忠壇), 동래(東萊)의 의사총(義士塚)의 예에 따라 비 옆에 단을 세우게 하였다. 매년 성을 격파한 날에 제사를 설행하여 영령을 위로하게 하였다. 영의정(領議政) 김재찬(金載瓚)이 경연 자리에서 아뢴 말을 따라, 고(故) 순무 중군(巡撫中軍) 유효원(柳孝源)에게 아경(亞卿)의 직책을 증직하였다. 전주부(全州府)에 남고성(南固城)을 세워 별장(別將)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