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 3년(丙寅三年, 1866) 봄 2월에 대왕대비(大王大妃)가 수렴청정(垂簾聽政)을 그만 두셨다.
3월에 사학인(邪學人, 천주교인) 남종삼(南鍾三) 등을 참수하고 『척사윤음(斥邪綸音)』1)천주교를 배척하기 위해 내린 교지를 말한다.을 내리셨다.
가을 9월에 프랑스[佛國] 수군 제독[水師提督] 로즈[魯勢, Roze, P.G.]가 선교사(宣敎師) 리델[李德兒, Ridel]의 호소를 듣고 7척의 함대(艦隊)를 이끌고 강화도(江華島)를 습격하였다. 유수(留守) 이인기(李寅夔)와 통진 부사(通津府使) 이공렴(李公濂)은 도망가고, 전(前) 판서(判書) 이시원(李是遠)은 독약을 먹고 죽었다. 왕께서 이경하(李景夏)를 순무사(巡撫使)로 삼고 이원희(李元熙)를 중군(中軍)으로 삼으신 후 가서 방어하도록 하였다. 천총(千摠) 양헌수(梁憲洙)가 강계(江界)의 정예 포수 5천 명으로 정족산성(鼎足山城)에 주둔하고 프랑스 군[佛兵]을 깨뜨렸다. 이때 궁궐을 짓는 데 필요한 비용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호대당백전(戶大當百錢)을 주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