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해(1888)에 3영을 다시 설치하여 민영익(閔泳翊)은 통위사(統衛使)로, 한규설(韓圭卨)은 장위사(壯衛使)로, 이종건(李鍾健)을 총어사(總禦使)로 임명하셨다. 춘천부(春川府)를 유수(留守) 겸(兼) 진어사(鎭禦使)로 승격하였으며, 박문국(博文局)을 혁파하였다. 영국(英國) 사람 핼리팩스[奚來百士, Hallifax, T.E.]는 전선의 가설(架設)에 공이 있었는데, 전선의 효과가 컸으므로 통정(通政)의 품계를 특별히 제수하셨다. 대왕대비(大王大妃)의 보령이 여든한 살이 되셨기 때문에 휘호(徽號)를 직접 올리셨다. 문무 및 음서 관리 중 81세가 된 사람들을 가자(加資)하셨으며, 기로과(耆老科)를 실시하셨다. 기자(箕子)의 묘를 봉릉(封陵)하였다.
겨울 10월에 일본 변리 대신(日本辨理大臣) 민영준(閔泳駿)을 교체하라 명하시고 참찬관(參贊官) 김가진(金嘉鎭)을 판사 대신(辦事大臣)으로 올리어 주재하라 명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