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해(1891)에 주전소(鑄錢所)를 평양(平壤)에 분설(分設)하여 당오전(當五錢)을 주조하였다. 영의정(領議政) 심순택(沈舜澤)이 왕세자(王世子) 수하의절(受賀儀節)을 의논하여 남면(南面)으로 정하였다. 호군(護軍) 이용원(李容元)이 남면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임을 상소로 논하다 흑산도(黑山島)에 천극(栫棘)되었다. 경리청(經理廳)을 설치한 후 민영준(閔泳駿)으로 하여금 북한산(北漢山)에 진(鎭)을 치도록 하였다. 동명왕(東明王)의 묘를 봉릉(封陵)하였다. 교환국(交換局)을 설치하여 은(銀)⋅동(銅)⋅화폐(貨幣)로 엽전(葉錢)과 당오전이 지장 없이 통용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