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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원전 373년

기원전 373년

기미(己未)

거란(契丹)이 회군하여 귀주(龜州)를 지나가자 강감찬(姜邯贊)이 추격하여 격파하니 죽은 시체가 들을 덮고 살아 돌아간 자는 겨우 수천 명이었다. 강감찬이 개선하여 돌아오자 왕은 친히 맞이하여 채붕(彩棚)을 설치하여 장사(將士)들에게 연회를 베풀어 주었다. 금으로 만든 꽃가지 8개를 강감찬의 머리에 꽂아주고, 오른손으로는 잔을 들고 왼손으로는 손을 잡고 위로와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강감찬이 표를 올려 벼슬을 물러나기를 청하자 허락하지 않고 궤장(几杖)을 하사하면서 3일에 한 번씩 조회하도록 하고, 태위 문하시랑 평장사(太尉門下侍郞平章事)와 천수현 개국남(天水縣開國男)을 더하고 식읍(食邑) 3백 호를 더해 지급하고, 추충 협모 안국 공신(推忠協謀安國功臣)의 작호를 하사하였다.

○ 흑수말갈(黑水靺鞨)이 와서 조회하였다.

○ 사신을 거란에 파견하였다.

○ 신라의 시랑(侍郞) 최치원(崔致遠)을 문창후(文昌侯)로 추봉하고 선성묘(先聖廟)에 배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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