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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원전 266년

기원전 266년

병오(丙午)

이자겸(李資謙)이 그의 무리들을 현관 요직에 많이 심어 포진시켰다. 또 군국(軍國)의 일을 도맡고자 하므로 왕이 매우 미워하였다. 내시(內侍) 김찬(金粲)과 안보린(安甫鱗)이 왕의 뜻을 헤아려 알아내고 지추밀(知樞密) 지연록(智延祿)과 함께 이자겸과 척준경(拓俊京)을 죽이려고 모의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자겸과 척준경이 군사를 이끌고 대궐을 침범하여 궁궐을 불사르고 왕을 위협하여 남궁(南宮)으로 옮겼으며 안보린 등을 살해하였다.

○ 이자겸이 지연록과 김찬 등을 먼 곳으로 유배보내고, 가는 도중에 지연록을 죽였다.

○ 이자겸이 왕을 위협하여 자기 집으로 옮겼다. 왕의 좌우가 모두 이자겸의 무리였기 때문에 국사(國事)를 스스로 듣고 결단하지 못하니, 이자겸과 척준경의 위세가 더욱 거세었다.

○ 황무(黃霧)가 사방을 가리고 해의 빛깔이 피와 같았다.

○ 척준경을 판병부사(判兵部事)로 삼았다. 이 때 이자겸의 권세가 날로 커지자, 왕과 내의(內醫) 최사전(崔思全)이 모의하였다. 최사전이 말하기를, “이자겸이 발호하는 것은 오로지 척준경 때문입니다. 만약 척준경을 얻는다면 병권이 왕에게 돌아와 이자겸은 일개 지아비일 뿐입니다.” 하고, 이어 척준경의 집에 가서 왕실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충성해 줄 것을 설득하자 척준경이 마음속으로 옳게 여겼다. 마침 노비 문제로 다투어 이자겸과 틈이 생겼다.

○ 왕이 연경궁(延慶宮)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자겸이 군대를 보내 궁궐을 침범하니 왕이 척준경에게 손수 편지를 써 보내어 대처토록 하였다. 척준경이 갑옷을 입고 궁궐로 들어가 왕을 받들고 나오는데, 이자겸의 무리들이 화살을 쏘았다. 척준경이 칼을 매만지며 한번 큰 소리로 외치니 감히 움직이는 자가 없었다. 왕이 군기감(軍器監)에 나아가 군사들의 호위를 엄하게 하고 이자겸을 불러 가두고 연경궁으로 돌아왔다. 이자겸과 그의 처자를 유배하고, 그 여러 무리들을 먼 곳으로 나누어 유배하였다.

○ 간관(諫官)이 아뢰기를, “두 왕비 이씨는 임금에게 종모(從母)가 되므로 배필이 될 수 없습니다.”라고 하니, 왕이 이에 두 왕비를 내보내고 임씨(任氏)를 들여 왕비로 삼았다.

○ 이자겸이 유배지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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