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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원전 122년

기원전 122년

경오(庚午)

임연(林衍)이 걱정과 고민을 하다가 등창이 발병하여 죽었다.

○ 이 때 왕이 몽고(蒙古)에서 돌아왔다. 아직 도착하기 전에 먼저 사람을 보내 신료들에게 유시(諭示)하여 옛 도읍지로 나와 도읍하라고 하니 임유무(林惟茂) 【임연의 아들이다.】 가 왕명을 어기고자 하여 백관들을 불러 의론하였는데, 모두 “임금의 명령을 어길 수 없다.”라고 하였다. 임유무가 노하여 따르지 않으니 어사 중승(御史中丞) 홍문계(洪文系), 지문하성(知門下省) 송송례(宋松禮) 등이 임유무를 죽이고 정사를 왕실로 되돌렸다.

○ 왕이 옛 도읍지로 환도하자 장군(將軍) 김지저(金之氐)를 파견하여 마침내 별초(別抄) 명부를 혁파하니, 군사들의 심정이 위태롭게 여겨 의심하여 갈 바를 몰랐다. 장군(將軍) 배중손(裵仲孫)과 노영희(盧永禧) 등이 시기를 틈타 난을 일으켜 승화후(承化侯) 온(溫)을 핍박하여 왕으로 삼고 관부를 설치하고는 강화(江華)를 크게 노략질하였다. 얼마 후에 수졸(守卒)이 대부분 없어지자, 적이 능히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이에 배를 모아 공사(公私)의 모든 물건과 자녀를 싣고 바다에 띄워 남쪽으로 달아나 진도(珍島)에 들어가 웅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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