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조선역사 중
  • 고려기(高麗紀)
  • 위주(僞主) 우(禑)
  • 기원전 4년

기원전 4년

무진(戊辰)

우(禑)가 병력을 일으켜 평양(平壤)에 머무르며 요동(遼東) 정벌을 독려하였다. 이 때 최영(崔瑩)이 권력을 잡아 원나라를 섬기자는 의론을 주창하였다. 우리 태조 대왕(太祖大王)이 그 불가함을 진술하였으나, 우가 듣지 않았다. 최영을 팔도 도통사(八道都統使)로, 조민수(曺敏修)를 좌군 도통사(左軍都統使)로, 태조 대왕을 우군 도통사(右軍都統使)로 삼아 모든 군사를 출동시키고, 최영은 우와 함께 밤낮으로 방종하며 즐겼다. 【최영은 태조 대왕의 공명(功名)이 성대함을 깊이 꺼려하여 명(明)나라에 죄를 짓게 하려고 이 계획을 세웠다.】

○ 대동강(大同江) 물이 붉게 탁해졌다.

○ 우리 태조 대왕이 좌우 모든 군사를 역순화복(逆順禍福)으로 깨우쳐 설득하였다. 마침내 회군하여 위화도(威化島)에서 돌아오게 하였다. 우가 회군의 상황을 듣고 최영 등과 함께 경성(京城)으로 치달아 돌아왔다.

○ 우리 태조 대왕이 근교에 주둔하고는 글을 써서 최영의 죄를 열거하고 죄줄 것을 청하니 우가 듣지 않았다. 곽충보(郭忠輔) 등이 전정(殿庭)에 곧바로 들어가 최영을 찾아내 유배보냈다.

○ 우리 태조 대왕이 왕씨의 후예를 택하여 즉위시키려 하였다. 조민수가 듣지 않고 우를 강화(江華)로 추방하고, 우의 아들 창(昌)을 옹립하였다.

○ 우리 태조 대왕을 수시중(守侍中)으로 삼았다.

○ 최영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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