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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후 201년

임진(壬辰) 25년이다.

일본 관백(關伯) 평수길(平秀吉)이 청정(淸正) 등을 보내 대거 침략하였다.

○ 일본 군사가 동래(東萊)를 함락하니 부사(府使) 송상현(宋象賢)이 죽었다.

○ 광해군(光海君) 혼(琿)을 책봉하여 세자로 삼아 국사를 감무(監撫)하게 하였다.

○ 일본 군사가 경성(京城)에 가까이 오자 왕이 출궁(出宮)하여 행차하였다.

○ 왕이 밤중에 임진(臨津)을 건너면서 여러 대신을 불러 대책을 물어보니, 도승지(都承旨) 이항복(李恒福)이 먼저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병력이 부족하여 적을 막지 못하니 오직 서쪽으로 가서 명(明)나라에 원조를 요청하소서.”라고 하니, 왕이 마침내 서쪽으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 왕의 수레가 평양(平壤)에 나아가 머물렀고, 세자는 종묘 신주를 받들고 이천(伊川)에 머물렀다.

○ 이덕형(李德馨)을 파견하여 요동(遼東)에 이르러 원조를 요청하였다.

○ 명나라가 부총병(副摠兵) 조승훈(祖承訓)과 유격장(遊擊將) 사유(史儒) 등을 파견하여 요동군(遼東軍)을 이끌고 와서 구원하였다.

○ 제독관(提督官) 조헌(趙憲)이 의병(義兵)을 일으켜 금산(錦山)에서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 고경명(高敬命)·김천일(金千鎰) 등이 역시 의병을 일으켰으나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 일본 군사가 진격하여 평양성(平壤城)을 함락하였다.

○ 왕이 의주(義州)로 갔다.

○ 정곤수(鄭崑壽)를 파견하여 명나라에 가서 다시 군사를 요청하였다.

○ 명나라에서 이여송(李如松)과 유정(劉綎) 등을 보내어 와서 구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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