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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원후 337년

기원후 337년

무신(戊申) 4년이다.

갑진년 대상(大喪) 때의 흉악한 무리들이 기사년 사건에서 살아남은 무리들과 함께 모의하고 군사를 일으켰다. 이인좌(李麟佐)가 먼저 청주(淸州)를 침범하여 병사(兵使) 이봉상(李鳳祥)과 영장(營將) 남연년(南延年)을 죽였다. 정희량(鄭希亮)이 영남(嶺南)에서 일어나고 박필몽(朴弼夢)이 태인 현감(泰仁縣監)으로서 일어나 심유현(沈維賢)과 남태징(南泰徵)과 내응하였다. 평안 병사 이사성(李思晟), 함경 감사 권익관(權益寬), 전라 감사 정사효(鄭思孝) 등이 서로 규합하여 날을 잡아 서울로 침범하려 하였다. 전(前) 영의정 최규서(崔奎瑞)가 변고를 왕에게 보고하니, 병조 판서 오항명(吳命恒)이 출정하여 안성(安城)에서 호서의 적을 이겼다. 영남의 적은 영남 감영에서 평정되었다. 감사 황선(黃璿)은 독을 맞고 죽었다. 여러 적과 그 무리 박필몽(朴弼夢)과 종실(宗室) 탄(坦) 등을 토벌하여 죽였다. 이봉상과 남연년 등을 정려(旌閭)하고 사당을 세웠다.

○ 11월에 세자가 죽으니 시호를 효장(孝章)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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