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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후 493년

갑신(甲申) 21년이다.

우정총국(郵征總局)을 설치하였다.

○ 관복(冠服)은 흑단령(黑團領)을 전용(專用)하고, 사복(私服)은 소개마 좁은 옷[窄袖衣]과 전복(戰服)과 사대(絲帶)를 착용하도록 명하였다.

○ 부평부(富平府)에 해방영(海防營)을 설치하였다.

○ 10월 17일 밤에 김옥균(金玉均)·홍영식(洪英植)·박영효(朴泳孝)·서광범(徐光範)·서재필(徐載弼) 등이 일본 병사를 불러들여 왕이 경우궁(景祐宮)으로 옮겼다. 찬성(贊成) 민태호(閔台鎬), 지사(知事) 조영하(趙寧夏), 해방 총관(海防總管) 민영목(閔泳穆), 좌영사(左營使) 이조연(李祖淵), 우영사(右營使) 윤태준(尹泰駿), 전영사(前營使) 한규직(韓圭稷), 중관(中官) 유재현(柳載賢)이 해를 입었다.

○ 이 날 궁궐의 각 전(殿)과 궁(宮)이 궁궐을 떠나 묵었다.

○ 19일에 일본 병사들이 물러갔다.

○ 왕이 북묘(北廟)로 떠나 머물렀다가 다시 선인문(宣仁門) 밖 청나라 통령(統領) 오조유(吳兆有)의 영방(營房)에 머물렀다. 각 전과 궁은 노원(蘆原)땅으로 떠나 묵었다.

○ 벼슬아치와 일반 백성의 평상복 착용을 편의에 따르도록 명하였다.

○ 17일부터 19일까지 전교(傳敎)와 정사 및 계사(啓辭) 등의 문서를 시행하지 않았다.

○ 왕이 다시 돌아오고, 이튿날 각 전과 궁도 다시 돌아왔다.

○ 영국·독일과 통상 조약을 맺었다.

○ 제중원(濟衆院)을 설치하였다.

○ 외무 독판(外務督辦) 조병호(趙秉鎬)를 대관(大官)으로 임명하여 인천항(仁川港)의 통상 사무를 감리하도록 하고, 홍순학(洪淳學)을 부관(副官)으로 임명하여 인천에 가서 일을 처리토록 하였다.

○ 통리 군국 아문(統理軍國衙門)을 혁파하여 의정부(議政府)에 통합하도록 명하였다.

○ 예조 참판 서상우(徐相雨)를 전권 대신(全權大臣)으로 특별히 임명하고, 외무 협판(外務協辦) 목인덕(穆麟德)을 부대신(副大臣)으로 특별히 임명하여 일본과 일을 처리하도록 하였다.

○ 해방 총관(海防總管) 이규원(李奎遠)을 동남 개척사(東南開拓使)로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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