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조선역대사략 권1
  • 삼국기(三國紀) 신라(新羅)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 〔신라 무열왕 원년 / 고구려 보장왕 13년 / 백제 의자왕 14년〕
  • 기원전 733년 기미

기원전 733년 기미

【신라 무열왕 5년 ○ 고구려 보장왕 17년 ○ 백제 의자왕 18년】

백제가 신라의 독산(獨山)·동잠(桐岑) 등의 성을 공격하였다.

한산주(漢山州) 【지금의 경도(京都)】 에 장의사(壯義寺)를 창건하였다.

○ 신라 왕이 백제를 정벌하려고 당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였는데 소식이 없자 얼굴에 근심하는 기색이 드러났다. 그때 장춘파랑(長春罷郞)인 듯한 사람이 나타나 말하기를, “당 황제가 이미 소정방(蘇定方) 등에게 군대를 통솔하라 명하였으니 이듬해 5월이면 백제를 정벌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고 홀연히 보이지 않았다. 왕이 기이하게 여기고 절을 창건하여 장춘파랑의 명복을 빌었다. 장춘파랑은 일찍이 백제와의 전투에서 죽은 사람이다.

○ 아홉 마리의 호랑이가 고구려 성 안으로 들어왔다.

○ 많은 여우가 백제의 궁궐 안으로 들어왔다.

○ 백제 왕도(王都)의 우물 물과 사비의 하천이 피처럼 붉게 변하였고, 궁중에는 귀신이 나타나는 일이 있었다.

○ 귀신이 백제 궁중에 들어와 크게 부르짖으며 “백제가 망하겠구나. 백제가 망하겠도다.” 하고는 곧장 땅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왕이 사람을 시켜 파도록 하니 이에 거북이 등에 문장이 적혀 있었는데, ‘백제는 둥근 달과 같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百濟同月輪 新羅如月新)’라고 되어 있었다. 왕이 글 뜻을 무당에게 물으니 해석하기를, “둥근 달과 같다는 것은 가득 채워짐이니 가득 채워지면 이지러지게 되는 것이요, 초승달과 같다는 것은 아직 채워지지 않은 것이니, 아직 채워지지 않은 것은 채워지게 된다.”라고 풀이하였다. 왕이 노하여 무당을 죽였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둥근 달과 같다는 것은 왕성하다[盛]는 것이고 초승달과 같다는 것은 미약하다[微]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나라는 왕성하고 신라는 미약하다는 것을 뜻합니다.”라고 하니 왕이 기뻐하였다.

○ 당나라 황제 【고종(高宗)】 가 대장 소정방(蘇定方) 등을 파견하여 신라 군대와 함께 백제를 정벌하였다. 이에 앞서 백제 왕이 신라 도성 북쪽에 있는 여러 성을 공격하여 빼앗았다. 또 고구려와 모의하여 신라가 당나라에 조빙 가는 길을 끊어 버렸으므로 신라가 당나라 황제에게 위급함을 고하였다. 소정방을 대총관(大總管)으로 삼고, 김인동(金仁同)을 부총관으로 임명하여 수륙군을 통솔하여 정벌하게 하고, 신라 왕에게 칙서를 내려 성원토록 하였다. 이에 왕이 김유신 등을 거느리고 출사(出師)하였다.

백제 왕이 싸워야 할 것인지, 지켜야 할 것인지를 묻자, 어떤 사람은 당나라 군사를 먼저 쳐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신라 군사를 먼저 쳐야 한다고 하였다. 왕이 다시 흥수(興首)에게 묻자 대답하기를 “마땅히 용맹한 병사를 배치하여 요충지를 지키게 하여 당나라 군대는 백강을 건너오지 못하게 막고, 신라 군대는 탄현을 넘어오지 못하게 하며, 성문을 굳게 닫고 견고히 지키다가 적병이 지치고 식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려 격파하는 것이 옳겠습니다.”라고 하였다. 흥수는 일찍이 죄를 얻어 외지에 귀양 간 일이 있었기 때문에 좌우의 신하들이 모두 말하기를, “흥수가 임금을 원망하고 나라를 사랑하지 않으니 그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고 하므로 왕이 흥수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다.

○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백제 도성을 포위하여 함락하자, 왕이 탄식하기를, “성충의 말을 듣지 않아서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후회스럽구나.” 하고, 태자와 함께 밤중에 웅진성(熊津城)으로 달아났다. 왕궁의 모든 궁녀들은 대왕포의 바위 위로 달아나 떨어져 죽었다. 후세 사람들이 그 바위를 낙화암(落花巖)이라 부른다. 왕이 이기지 못할 것을 알고 소정방에게 가서 항복하였다. 신라 왕이 소정방과 장수들을 위해 크게 주연을 베풀면서 의자왕에게 당상(堂上)의 군신들에게 술을 돌리게 하니, 오열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 소정방은 의자왕과 왕자, 대신과 장수 88명, 백성 12,807명을 데리고 바다를 건너 당나라로 돌아갔다. 당나라는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 등 5군도독부(五郡都督府)를 두고 유인원(劉仁願)에게 명하여 사비성에 주둔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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