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弓裔)가 모반하여 북원(北原)에 웅거하였다. 궁예는 헌안왕의 서자로서 5월 5일 한낮에 태어났는데 태어날 때부터 치아가 있었다. 일관(日官)이 왕에게 죽일 것을 권유하니 유모가 포대기에 싸서 도망치다가 잘못하여 손으로 눈을 찔러 한쪽 눈이 애꾸가 되었다. 나이 10여 세에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자칭 미륵불(彌勒佛)이라 하였고 불승(佛僧)의 계율에 구애받지 않았다. 도적이 봉기하는 것을 보고 처음 죽산(竹山)의 도적에게 의탁했다가 다시 북원 【북원은 지금의 원주(原州)이다.】의 도적인 양길(梁吉)에게 의탁하였다. 군사를 나누어 동쪽 지방을 침략하였는데, 여러 번 싸워 번번이 이겼다. 처음에는 송악(松岳)에 도읍하고 자칭 후고려(後高麗)라 하였다. 후에 철원(鐵圓)으로 옮기고 국호를 태봉(泰封)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