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金)나라가 사신을 파견하여 와서 서찰을 내 놓았는데 “고려 국왕에게 조유(詔諭)한다.”는 등의 말이 있었다.
○ 국학(國學)에 양현고(養賢庫)를 설립하였다. 왕이 유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배우려는 학생 수를 늘리고 유명한 유학자를 선발하여 학관(學官)으로 삼아 가르쳐 인도하니 문풍(文風)이 점차 진작되었다.
○ 금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조빙하였다. 국서(國書)에 “하물며 저들의 근원이 우리에게서 나왔음에랴[況彼源發乎吾]?”라는 말이 있자, 금나라 왕이 거절하고 받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