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조선역대사략 권2
  • 고려기(高麗紀)
  • 고종(高宗)
  • 기원전 160년 임진 [고종 19년]

기원전 160년 임진 [고종 19년]

조정에서 귀주(龜州)에게 몽고에 항복하도록 타이르니, 박서가 이에 물러나 향리로 돌아갔다. 【후에 평장사(平章事)에 제배되어서 졸하였다.】

태집성(太集成)을 보내어 자주(慈州)의 수신(守臣) 최춘명(崔椿命)에게 몽고에 항복하도록 타일렀으나 듣지 않았다. 태집성은 최우(崔瑀)에게 최춘명을 죽이겠다고 말하고, 장차 최춘명을 죽이려 하는데, 몽고인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나에게는 반역이 되지만 당신에게는 충신이오. 이미 화약을 맺었는데 성을 온전하게 지킨 충신을 죽이는 것이 옳겠는가?” 하고 굳이 청하므로 풀어주었다.

○ 몽고가 달로화적(達魯花赤) 72인을 경(京)·부(府)·주(州)·현(縣)에 두고 감독하였다.

○ 사신을 파견하여 표(表)를 받들고 몽고에 갔다.

○ 최우가 왕을 협박하여 강화(江華)로 도읍을 옮겼다.

○ 윤복창(尹復昌)을 북계(北界)에 파견하여 달로화적의 활과 화살을 모두 빼앗게 하였는데, 선주(宣州)에 이르자 달로화적이 윤복창을 살해하였다.

○ 몽고는 우리나라가 도읍을 강화(江華)로 옮겨가고, 달로화적을 구금하여 욕하였다 하여 다시 살례탑(撒禮塔)을 보내 대거 침입해 와서는 이첩(移牒)하여 죄를 나열하였다. 몽고 병이 있는 곳마다 도륙하여 비록 노약자나 부녀자라 하더라도 모두 죽였다.

○ 몽고 병사가 처인성(處仁城) 【용인(龍仁)에 있다.】 을 공격하는데, 한 승려가 싸움을 피해 성 안에 있다가 살례탑을 사살하였다. 【이후 매년 침입해 왔다.】 그 승려가 공이 있기 때문에 상장군(上將軍)을 제수하였으나 승려가 공을 꺼려 굳이 사양하였다. 【환속한 뒤의 이름은 김윤후(金允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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