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조선역대사략 권2
  • 고려기(高麗紀)
  • 원종(元宗)
  • 기원전 132년 경신 [원종 원년]

기원전 132년 경신 [원종 원년]

【송 이종(宋理宗) 경정(景定) 원년】

태자가 몽고에서 돌아와 즉위하였다. 처음 몽고 헌종(憲宗)이 남쪽으로 정벌에 나서 조어산(釣魚山)에 군사를 주둔하고 있었는데, 태자 일행이 육반산(六槃山)에 이르러서 몽고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황제의 아우 홀필렬(忽必烈)이 강남(江南)에서 군대를 돌보고 있었다. 태자는 마침내 남쪽으로 수레를 몰아 양초(梁楚)의 교외에 닿았다. 황제의 아우가 마침 양양(襄陽)에서 군대를 돌이켜 오다가 태자가 길 옆에서 맞이하자 놀라고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고려는 당 태종이 친히 원정하였으나 능히 정복하지 못하였다. 지금 그 태자가 스스로 왔으니 이것은 하늘의 뜻이다.” 하고 크게 칭찬하며 격려하고는 마침내 함께 북쪽으로 왔다. 태자가 왕의 흉보를 듣고 3일 동안 상복을 입은 다음 복을 벗었다.

몽고의 강회 선무사(江淮宣撫使) 조양필(趙良弼)이 황제의 아우에게 말하기를, “고려는 산에 의지하고 바다에 막혀 나라에서 군사를 동원한 것이 20여 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신하로 복속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 태자가 내조하여 2년 동안 머물러 있었지만 공궤와 시설이 허술하여 화목한 마음을 품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들으니 그 아버지가 이미 죽었다고 하는데 전(倎)을 옹립하여 왕으로 삼고 후대하여 돌려보내십시오. 그는 반드시 은혜에 감동하여 신하의 직분을 닦을 것이니 이는 애쓰지 않고도 한 나라를 얻는 것입니다.” 하였다.

대신 염희헌(廉希憲) 또한 그렇게 말하자, 황제의 아우도 그들의 의견이 옳다고 여겼다. 그 날로 관(館)을 바꾸고 대우를 더하고, 달로화적 속리대(束里大)와 강화상(康和尙) 등에게 명하여 호위하여 환국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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