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조선역대사략 권2
  • 고려기(高麗紀)
  • 원종(元宗)
  • 기원전 122년 경오 [원종 11년]

기원전 122년 경오 [원종 11년]

임연이 걱정과 고민으로 인하여 등창이 발병하여 죽었다. 감국(監國) 신안후(信安侯) 종(悰)이 그의 아들 임유무(林惟茂)에게 교정 별감(敎定別監)을 이어받게 하였다. 임유무는 병사들로 자신을 호위하게 하고 국명(國命)을 잡았다.

○ 그 때 왕이 몽고에서 돌아왔다. 아직 도착하기 전에 먼저 사람을 보내 신료들에게 유시하여 옛 서울로 나와 도읍하게 하였다. 임유무가 왕명을 어기고 백관들을 불러 논의를 하니, 모두 말하기를, “임금의 명령을 어길 수 없다.”라고 하였다. 임유무가 노하여 따르지 않으니, 어사 중승(御史中丞) 홍문계(洪文系), 지문하성(知門下省) 송송례(宋松禮) 등이 임유무를 죽이고 정사를 왕실로 되돌렸다.

○ 왕이 세자와 함께 몽고로부터 도착하여 옛 서울로 환도(還都)하였다.

○ 영령공(永寧公) 순(綧)이 몽고에 인질로 간지 여러 해 되어 마침내 몽고 장수가 되었는데 홍다구(洪茶丘)의 참소를 받아 그 병마를 빼앗겼다. 이때에 이르러 처자를 이끌고 환국하였다.

○ 일찍이 최우가 나라 안에 도적이 많은 것을 우려하여 용사들을 모아 매일 밤 순행하며 폭력을 엄하게 단속하였다. 이로 인하여 이름을 야별초(夜別抄)라고 하였는데, 마침내 좌우(左右)로 나누고 또 나라 사람 중에 스스로 몽고에서 도망하여 돌아 온 자들로 하나의 부(部)를 만들고 신의(神義)라고 일컬었다. 이것이 삼별초(三別抄)로서 녹봉을 후하게 하니 힘껏 일하였다. 김준이 최의를 죽이고, 임연이 김준을 죽이고, 송송례가 임유무를 죽인 것은 모두 그 힘을 빌린 것이다.

왕이 옛 도읍지로 환도함에 이르러 장군 김지저(金之氐)를 파견하여 마침내 삼별초군을 혁파하고 명부를 가지고 돌아왔다. 얼마 후에 혁파된 삼별초 군인들이 위태롭게 여겨 의심하여 갈 바를 몰랐는데, 장군 배중손(裵仲孫)·노영희(盧永禧) 등이 시기를 틈타 난을 일으켰다. 승화후(承化侯) 온(溫)을 핍박하여 왕으로 삼고, 관부(官府)를 설치하고 강화도를 크게 노략질하였다. 얼마 후에 수졸(守卒)이 대부분 죽거나 육지로 떠나자, 적들은 능히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이에 배를 모아 공사간의 재화(財貨) 및 자녀들을 모두 싣고 바다로 달아나 남쪽으로 달아나 진도(珍島)에 들어가 웅거하였다.

○ 참지정사(參知政事) 신사전(申思佺)을 남적 추토사(南賊追討使)로 임명하여 병사를 이끌고 쫒아 체포하도록 하였다.

○ 세자 심을 파견하여 몽고에 입조하였다.

○ 남적 추토사 신사전을 파면하였다. 김방경(金方慶)을 전라도추토사(全羅道追討使)로 삼아 몽고 장수 아해(阿海)와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진도를 토벌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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