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李穡)을 성균 대사성(成均大司成)으로 삼고, 정몽주(鄭夢周)를 박사(博士)로 삼았다. 이색은 경술(經術)에 밝은 유사(儒士) 정몽주·김구용(金九容)·박상충(朴尙衷)·박의중(朴宜中)·이숭인(李崇仁) 등을 뽑아 모두 교관(敎官)을 겸하게 하여 여러 유생을 교수하도록 하니 성리(性理)의 학문이 비로소 일어났다.
【정몽주는 자(字)는 달가(達可)이고 호는 포은(圃隱)이다. 어려서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늙어서도 게을리 하지 않아 동방 이학(東方理學)의 조(祖)가 되었다. 일찍이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본받아 사서(士庶)들에게 사당을 세우고 봉사(奉祀)토록 하였으며, 또한 도성에는 오부 학당(五部學堂)을 세우고 지방에는 향교(鄕校)를 설치하여 교화를 일으키고 가르침을 세우는 근본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