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태조 홍무 22년】
우왕을 강릉(江陵)으로 옮기고, 창왕을 강화(江華)로 내쫓았다.
정창군(定昌君) 요(瑶)를 옹립하여 왕으로 삼았다. 【태조 대왕이 심덕부(沈德符)·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의론하기를, “우와 창이 본래 왕씨가 아니므로 종사(宗祀)를 받들 수 없으며, 또 천자(天子)가 다른 성씨[異姓]를 왕으로 삼은 일로 책망하니, 마땅히 가짜를 폐하고 진짜를 세워야 한다[廢假立眞].”라고 하였다. 이에 정비(定妃)의 교지를 받들어 정하여 우를 옮기고 창을 내쫓고는 정창군을 영립한 것이다.】
○ 신우(辛禑)와 신창(辛昌)을 죽이고 이색(李穡) 등을 유배하였다. 【대간(臺諫)에서 상소하기를, “이색 등은 이인임(李仁任)이 신씨(辛氏)를 옹립할 때에는 일찍이 한 마디의 말도 없다가 조민수(曺敏修)가 창을 옹립할 때에는 앞장서서 대책을 정하였으니, 마땅히 유사(有司)를 두어 그 죄를 올바로 밝혀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이인임의 집은 파서 못을 만들고, 이색·조민수·이숭인(李崇仁) 등은 먼 곳으로 유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