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조선역대사략 권3
  • 본조기(本朝紀)
  • 태조 대왕(太祖大王)
  • 기원후 3년 갑술 [태조 3년]

기원후 3년 갑술 [태조 3년]

한양 궁궐이 이루어져서 【경복궁은 북악산을 뒤에 두고 남면(南面)하였다. 선조(宣祖) 임진년의 왜란 때에 불타버렸다. 지금 임금1)고종(高宗) 을축년에 다시 중건하였다. ○ 창덕궁과 창경궁 두 궁도 차례로 건축하였는데 모두 별궁(別宮)이다. 창덕궁은 북부(北部) 광화방(廣化坊)에 있고, 창경궁은 창덕궁 동쪽에 있다. 창경궁은 성종 계묘년에 고쳐 지었고, 광해군 병진년에 또다시 고쳐 지었다.】 드디어 수도를 옮겼다.

○ 종묘(宗廟)를 세웠다.

○ 공양군(恭讓君) 왕요(王瑤)가 죽었다. 【왕의 작위를 추존하여 봉하였다.】

○ 명나라 조정에 주문(奏文)을 올려 종계(宗系)의 잘못된 것을 분명히 해달라고 청하였다. 이에 앞서 죄인 윤이(尹彛)와 이초(李初)가 반역을 일으켜 중국에 들어가서는 국조의 계통이 고려의 역신(逆臣) 이인임(李仁任)의 후손이 된다고 무고하였다. 중국 사신이 산천에 제사지낼 축문을 가지고 왔는데, 축문 가운데 이인임의 후손 아무개 등이라는 말이 있었으므로 주문을 갖추어 변무(卞誣)를 청한 것이다.

○ 정안군(靖安君)을 명나라에 파견하였다. 【곧 태종 대왕이다.】 처음 명나라 황제가 본국에서 사람을 보내 금백(金帛)을 싸가지고 요동에 도착하여 국경 변방의 장수를 꾀고, 또 여진(女眞)을 꾀어 압록강을 몰래 건넌 것을 들어 조서를 내려 책망하였다. 왕이 정도전에게 표문(表文)을 지어 해명토록 하였는데, 명나라 황제가 표문의 내용이 교만하다 더욱 진노하였다. 요동에 명하여 조선 사신을 받아들이지 말도록 하였다. 얼마 후에 친아들을 보내라고 유시하였다. 이에 태종 대왕이 표문을 받들고 명나라에 간 것이다. 연부(燕府)를 지나가는데 명나라 태종은 당시 연왕(燕王)이었는데, 친히 만나보고 매우 극진하게 예우하였다. 태종 대왕이 명나라에 도착하여 모든 것을 상세히 아뢰니, 명나라 황제가 예우를 후하게 하고 돌려보내며 조빙(朝聘)을 통하도록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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