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조선역대사략 권3
  • 본조기(本朝紀)
  • 세종 대왕(世宗大王)
  • 기원후 42년 계축 [세종 15년]

기원후 42년 계축 [세종 15년]

비로소 아악(雅樂)을 바로잡았다. 당시 8음(八音)이 갖추어지지 않았는데 마침 검은 기장이 해주(海州)에서 나오고, 경석(磬石)이 남양(南陽)에서 생산되었다. 왕이 명하여 검은 기장을 취하여 그 분촌(分寸)을 쌓아 고제(古制)에 의거하여 경성(磬聲)을 만드니 음이 어울리었다. 아악이 비로소 갖추어지니 조정의 제사에 쓰게 하였다. 제작의 도수(度數)는 모두 왕의 결재를 거치도록 하였다.

○ 양로연(養老宴)을 베풀었다. 남자는 왕이 친히 행차하여 대접하고, 여자는 왕비가 친히 대접하였다.

○ 파저강(婆猪江)의 야인(野人) 이만주(李滿住) 등이 변경을 침범하자, 최윤덕(崔潤德)을 파견하여 토벌하고 평정하였다.

○ 경원(慶源)과 영북(寧北)의 두 진을 옮겼다. 왕이 황희(黃喜)와 맹사성(孟思誠) 등을 불러 두 진을 옮기는 일에 대해 의론하고, 교지를 내려 이르기를, “태조가 왕업의 기초를 시작한 땅을 중요시하여 처음으로 공주(孔州)에 경원부를 설치하였으며, 태종은 경원부의 치소를 소다로(蘇多老)로 옮겼다. 일찍이 명을 내려 ‘만약 오랑캐가 와서 거주하려고 하면 곧바로 내쫓아 적의 소굴이 되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다. 지금 소다로와 공주는 오랑캐의 기마가 사냥하는 마당이 되었다. 또한 알목하(斡木河)는 곧 두만강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바로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으니, 거진(巨鎭)을 설치하기에 합당하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다시 경원부를 소다로에 되돌리고, 영북진을 알목하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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