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조선역대사략 권3
  • 본조기(本朝紀)
  • 선조 대왕(宣祖大王)
  • 기원후 201년 임진 [선조 25년]

기원후 201년 임진 [선조 25년]

왜의 우두머리 평수길이 청정(淸正) 등을 보내와 대거 침략하였다.

○ 적이 동래(東萊)를 함락하여 부사(府使) 송상현(宋象賢)이 죽었다.

○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군국(軍國)의 일을 감무(監撫)하게 하였다. 왕에게는 적통의 후사가 없고, 임해군(臨海君)과 광해군은 곧 공빈 김씨(恭嬪金氏)의 소생인데, 임해군이 장남이었다. 이때에 이르러 변란을 만나자 왕세자 책봉을 논의하였는데, 임해군은 정신병[狂疾] 증세가 있었던 까닭에 이에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였다.

○ 적이 한양(漢陽)에 임박해 왔으므로 임금이 출궁(出宮)하여 행차하였다.

○ 왕이 밤중에 임진강을 건너면서 여러 대신을 불러 대책을 논의하니, 도승지 이항복(李恒福)이 먼저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병력이 부족하여 적을 막으려면 오직 서쪽으로 가서 명나라에 원조를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하니, 왕이 마침내 서쪽으로 피난가기로 결정하였다.

○ 왕의 수레가 평양(平壤)에 이르러 머물렀다.

○ 이덕형(李德馨)을 파견하여 요동에 가서 원조를 요청하게 하였다.

○ 이덕형이 도착하여 여섯 번 글을 올리고 울면서 하소연하자 요청을 허락하였다.

○ 명나라에서 부총병(副摠兵) 조승훈(祖承訓)과 유격(遊擊) 사유(史儒) 등을 파견하여 요동군을 이끌고 와서 구원하였다.

○ 세자가 종묘 사직의 신주를 받들고 이천(伊川)에 머물렀다.

○ 제독관(提督官) 조헌(趙憲)이 의병을 일으켜 금산(錦山)에서 왜병과 싸워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조헌은 호는 중봉(重蜂)이고 천문에 정통하였다. 바야흐로 왜의 사신 현소(玄蘇)가 오자, 상소하여 그 사신을 참수하고 명나라 조정에 알릴 것을 청하였다. 또 군사를 엄중히 하여 대비할 것을 청하였다. 심지어 머리를 찧어 피가 흘러내리자 사람들이 그의 심한 행동을 기롱하였다. 조헌이 말하기를, “내년 이 때쯤 산골짜기에 숨어 반드시 내가 한 말을 기억하리라.”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그가 한 말이 과연 징험되었다. 마침내 의병을 일으켜 적을 토벌하다가 승려 영규(靈圭) 등 700명과 함께 동시에 죽었다.

○ 고경명(高敬命)·김천일(金千鎰) 등이 또한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죽었다. 고경명의 아들 고종후(高從厚)와 고인후(高因厚), 김천일의 아들 김상건(金象乾)도 모두 함께 죽었다.

○ 왜적이 진격하여 평양성을 함락하였다.

○ 왕이 의주(義州)로 피난갔다.

○ 정곤수(鄭崑壽)를 파견하여 명나라에 가서 군사를 요청하였다. 이 때 본국에서 요광(遼廣)의 각 아문에 연달아 사신을 파견하여 구원을 요청하였으나, 명나라 군대가 아직도 출발하지 않았다. 이에 정곤수를 파견하여 명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자, 이여송(李如松)과 유정(劉綎) 등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구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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