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조선역대사략 권3
  • 본조기(本朝紀)
  • 폐왕(廢王) 광해군(光海君)
  • 기원후 223년 갑인 [광해군 6년]

기원후 223년 갑인 [광해군 6년]

영창 대군(永昌大君) 의(㼁)를 죽였다. 영창 대군은 인목 대비의 소생이다. 이이첨(李爾瞻) 등이 영창 대군을 반역의 영수라고 지목하니, 삼사(三司)가 교대로 상소하여 죽이기를 청하였다. 광해군이 사람을 시켜 붙잡아 들이니, 그때 영창의 나이 8세로 왕대비의 품안에 있었다. 대비가 통곡하자, 왕의 사자가 협박하여 빼앗아 갔다. 마침내 강화(江華)에 안치하였다가 부사(府使) 정항(鄭沆)이 왕의 뜻을 받들어 불태워 죽였다.

○ 전 필선(弼善) 정온(鄭蘊)을 대정(大靜)에 안치하고, 상신(相臣) 이원익(李元翼)을 홍천(洪川)으로 유배하였다. 계축 옥사(癸丑獄事) 이후 정조(鄭造) 등이 다시 이이첨(李爾瞻)의 사주를 받고 폐모(廢母)에 대한 논의를 먼저 일으키자, 정온이 상소하여 정조 등의 죄를 논하였고, 이원익도 또 상소를 올렸는데 말이 매우 절실하고 솔직하였다. 광해군이 크게 노하여 정온을 안치하고, 이원익은 중도 부처(中途付處)하였다. 유생 조경기(趙慶起)·홍무적(洪茂績)·정복형(鄭復亨)·조직(趙溭) 등 또한 많은 선비들을 이끌고 상소하거나 혹은 홀로 상소하여 극언을 하다가 모두 귀양보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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