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조선역대사략 권3
  • 본조기(本朝紀)
  • 인조 대왕(仁祖大王)
  • 기원후 236년 정묘 [인조 5년]

기원후 236년 정묘 [인조 5년]

【이 해 명나라 희종(熹宗)이 붕어하고 의종(毅宗)이 즉위하였다】

금나라 사람들이 침입해 오자 왕이 강화도로 피난하였다. 금나라 사람이 강홍립을 향도(嚮導)로 삼아서 군사를 크게 일으켜 몰려와 의주(義州)를 함락하고 부윤(府尹) 이완(李莞)을 죽였다. 금나라 군사가 평산(平山)에 이르자 왕은 강도(江都)로 들어가고, 세자는 전주(全州)로 가서 남쪽 지방을 진무하였다.

○ 금나라 사람이 화친을 청하고 돌아갔다. 금나라 사람의 서한 가운데에 남조(南朝)를 돕지 말라는 말이 있었으나, 왕은 의리를 들어 받아들이지 않았다. 금나라 장수가 생각하기를, “조선은 예의를 지키는 나라이기 때문에 가히 협박해서는 다스릴 수 없다.”라고 하고, 다만 이웃으로 우호를 맺자고 청하였다. 조정에서는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

○ 명나라에서 원숭환(袁崇煥)을 파견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도우려고 하다가 얼마 후에 그만두고 돌아갔다. 사신 김상헌(金尙憲)이 북경(北京)에 있으면서 우리나라가 침략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글을 올려 구원을 청하자, 명나라 조정에서 원승환에게 명하여 병력을 이끌고 가서 구원토록 한 것이다. 군대가 압록강에 도착하여 금나라 사람이 이미 강화를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침내 돌아가 버렸다. 왕이 환도하였다.

○ 권첩(權帖) 등을 파견하여 명나라에 가서 침입을 당하여 매우 위급한 처지에서 속박당한 정황을 주문(奏聞)하였다.

○ 모문룡(毛文龍)이 벽동(碧潼) 등의 군(郡)을 공격하여 함락하였다.

○ 횡성(橫城) 사람 이인거(李仁居)가 군사를 일으켜 반란하였는데, 원주 목사(原州牧使) 홍보(洪靌)가 붙잡아 서울로 압송하여 죽였다.

○ 소무 공신(昭武功臣)으로 홍보(洪靌) 등 6인을 책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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