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조선역대사략 권3
  • 본조기(本朝紀)
  • 인조 대왕(仁祖大王)
  • 기원후 251년 임오 [인조 20년]

기원후 251년 임오 [인조 20년]

이계(李烓)를 처형하였다. 이계는 선천 부사(宣川府使)로 있으면서 몰래 장사하다가 일이 발각되어 청나라가 붙잡아 가두고 죽이려 하였다. 이계는 목숨을 구할 계책으로 우리나라의 비밀을 들추어내면서 이에 말하기를, “최명길(崔鳴吉)이 승려를 파견하여 명나라[南朝]와 통신하고 있으며, 이경여(李敬輿)가 숭덕(崇德) 연호를 쓰지 않고 있으며, 신익성(申翊聖)과 이명한(李明漢) 역시 명나라를 위하여 절개를 지키고 있다.”라고 고자질하였다. 마침내 모두 붙잡혀가 심양 감옥에 갇혔다가 일 년 만에 풀려났다. 이계가 조선에 돌아오자마자 왕이 명하여 죽였다.

○ 평안 병사 임경업(林慶業)이 도망하여 명나라에 들어갔다가 얼마 후에 돌아왔다. 임경업은 승려 독보(獨步)의 행장을 꾸려 명나라에 보낸 일로서 역시 이계(李烓)의 고발에 따라 우리나라에 의해 붙잡혀 압송되었다. 임경업은 도중에 달아나 바다를 건너 남경(南京)으로 향하다가 등주(登州)에 이르러 본진(本鎭)의 주장(主將)이었던 황종예(黃宗藝)에 의탁하였다. 얼마 후에 비장(裨將) 마등(馬登)의 과오로 결국 청나라 군대에 붙잡히게 되었다. 붙잡아 북경(北京)으로 호송하여 항복하도록 유혹받았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의사(義士)가 되어 함거에 실어 본국에 보내졌는데, 김자점(金自點)이 위관(委官)으로 있으면서 개인적인 유감을 품고 살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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