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조선역대사략 권3
  • 본조기(本朝紀)
  • 숙종대왕(肅宗大王)
  • 기원후 298년 기사 [숙종 15년]

기원후 298년 기사 [숙종 15년]

왕이 명하여 원자(元子)의 호를 정하였다. 【후궁 장씨(張氏)의 소생인데 나이가 겨우 2세였다.】

○ 왕이 목래선(睦來善)과 민암(閔黯) 등을 등용하고, 옛 신하 송시열(宋時烈)을 찬축(竄逐)하여 제주로 귀양보냈다. 김수항(金壽恒)·민정중(閔鼎重)·김수흥(金壽興)·김만중(金萬重)·이익(李翊) 등이 유배되었다. 이사명(李師命)·김익훈(金益勳)·이상(李翔) 등은 모두 죽였다. 문성공 이이와 문간공 성혼을 문묘에서 출척하고, 보사 공신(保社功臣)의 공훈도 삭제하였다.

○ 전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에게 사사(賜死)하였다. 김수항은 김상헌(金尙憲)의 손자이고 호는 문곡(文谷)이다. 일찍이 청렴하다는 명망이 있었고 오랫동안 문형(文衡)1)대제학(大提學)의 별칭.을 맡았는데, 진도(珍島)로 귀양갔다가 명을 받았다. 후에 문충(文忠)의 시호를 받았다.

○ 중궁 민씨를 폐위시키고 장씨(張氏)를 왕비로 책립(冊立)하였다. 판서 오두인(吳斗寅)과 응교 박태보(朴泰輔)가 간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 전 좌의정 송시열에게 사사(賜死)하였다. 송시열은 자는 영보(英甫)이고, 호는 우암(尤庵)이며,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일찍이 생원 시험에서 장원이 되었고, 인조 때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효종이 큰 뜻을 품고 가장 중시하여 위임을 더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민암(閔黯) 등의 무함을 받고 붙잡혔다. 정읍(井邑)에 이르러 사사하는 명을 받았다. 나이 83세였다. 뒤에 문정(文正)의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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