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조선역대사략 권3
  • 본조기(本朝紀)
  • 영종 대왕(英宗大王)
  • 기원후 380년 신묘 [영조 47년]

기원후 380년 신묘 [영조 47년]

왕손 인(裀)과 진(禛)을 제주도에 유배하였다. 【홍봉한(洪鳳漢)도 함께 귀양보내려다 갑자기 그만두었다.】

○ 청나라에 사신을 보내 『강감회찬(綱鑑會纂)』의 왜곡된 내용을 바로잡게 하였다. 청나라 사람 주린(朱璘)이 명기(明紀)와 종계(宗系)를 개수하였는데, 여전히 왜곡된 말이 그대로 있고, 인조반정과 관련한 일도 대부분 왜곡하여 기재되어 있었다. 왕이 이러한 사실을 듣고 놀라고 애통해하며 사신을 파견하여 명백하게 밝히게 하고, 『강감(綱鑑)』과 『황조통기(皇朝通紀)』를 모두 불태웠다. 그것을 숨긴 자들은 대부분 연좌되어 죽었다.

○ 한유를 처형하였다. 한유가 다시 상소하여 홍봉한을 공격하며 흉역(凶逆)으로 지목하자, 왕이 그를 미워하여 그가 임오년 사건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의심하였다. 아울러 그 무리인 심의지(沈義之)도 함께 목베어 죽였다.

○ 전주(全州)에 조경묘(肇慶廟)를 설립하였다. 【국조의 시조인 완산백(完山伯)을 제사지낸다.】

○ 신문고를 다시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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