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은 지독히 천주교를 싫어하여 프랑스 선교사를 붙잡아 죽였으며, 또한 많은 신도들을 사형에 처했다. 중국에 있던 프랑스 함대는 이를 알고는 곧바로 와서 강화도를 포격했으며, 마침내 그 읍성(邑城)을 점령했지만 곧 퇴각했다. 【게이오(慶應) 2년, 이태왕(李太王) 3년】 때문에 대원군은 점점 양이(攘夷)의 뜻을 굳히고 군대의 방비를 엄격하게 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미국의 군함도 역시 강화도에 와서, 일찍이 미국인이 조선에서 살해된 사건에 관해 교섭을 요구하면서, 수비병에게 포격을 가하였으나 성과를 얻지 못하고 돌아갔다. 【메이지(明治) 4년, 이태왕 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