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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箕子) 전설

기자(箕子)는 은나라 주왕(紂王)의 친척이자 그의 태사(太師)였다. 기국(箕國)에 봉해져 자작(子爵)이 되었기 때문에 기자라고 불렀다. 은나라 주왕은 음탕하고 포학하며 무도(無道)했으므로, 기자가 간언을 해도 듣지 않고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그리하여 기자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거짓으로 미친 사람 행세를 하였다.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이 주왕을 쳐서 은나라를 멸망시키자, 명령을 내려 기자를 감옥에서 풀어주었으므로, 기자는 조선으로 달아났으며, 주왕은 따라서 그를 그 땅에 봉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중국의 고서(古書)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볼 수 있는데, 매우 오래된 전설이다.

『사기(史記)』 【사마천(司馬遷) 편찬,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

“무왕(武王)은 이미 은(殷)나라를 이겼다. 기자를 찾아갔다. 기자는 홍범(鴻範)을 보고 있었다. 그리하여 무왕은 기자를 조선(朝鮮)에 봉했다. 신하로서 섬기지 않았다.”

『한서(漢書)』 【반고(班固) 편찬, 지금으로부터 1천 8백여 년 전】

“은나라는 도(道)가 쇠했다. 기자가 조선으로 갔다. 그곳 백성들에게 예의(禮義)와 밭농사[田]와 누에치기[蠶]와 베짜기[織作]를 가르쳤다.”

기자는 보통 오늘날의 평양에 도읍을 정했다고들 하지만, 아직 확실치는 않다. 또 그가 다스린 주민들은 어떤 종족이었는지도 명확치 않다. 현재 평양에 있는 기자의 능과 함께 기자의 묘(廟)는 고려 숙종(肅宗) 7년 【지금으로부터 810여 년 전】 에 창건된 것이다. 기자 다음에는 아무도 후(侯)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40여 년이 지나 준(準) 때에 이르러, 스스로 왕이라고 칭했다. 그렇지만 준은 마침내 위만(衛滿)에게 그 나라를 빼앗기고, 좌우 궁인(宮人)들과 함께 달아나 바다를 통해 마한(馬韓)의 영역으로 들어가서, 스스로 한왕(韓王)이라고 칭했지만, 후에 백제국에 병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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