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일제강점기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1
  • 1. 상고(上古) 시대의 조선반도
  • 비고(備考)
  • 위만(衛滿)의 사적(事蹟)

위만(衛滿)의 사적(事蹟)

위만(衛滿)은 원래 연(燕)나라 사람이다. 연나라는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부터 만주(滿洲)의 남부와 함께 중국 본토의 동북부에 위치했으므로, 조선과의 거리가 멀지 않았다. 후에 진(秦)나라에 병합되었으며, 이어서 한(漢)나라의 영토가 되었다. 한나라의 고조(高祖)가 천하를 안정시키자, 그의 장수인 노관(盧綰)을 연나라 왕에 봉했다. 이때 연나라와 조선은 패수(浿水) 【압록강인지 알 수 없다.】 를 경계로 삼았다. 그 후 노관 사건으로 노관이 흉노로 달아나자 위만은 고조선에 망명했는데, 무리 천여 명을 모아 패수를 건너 반도 땅으로 들어와, 조선의 왕인 준(準)에게 항복하고, 중국의 망명자들을 통할했으며, 서쪽 경계에 거주하여 조선의 국경을 지키는 것을 허락받았다. 확실히 한나라 초기의 대란에 즈음하여, 연(燕), 조(趙), 제(齊)와 마찬가지로 조선에 가까운 중국의 여러 지방들로부터 난을 피해 조선의 영토 안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매우 많았으며, 그 숫자가 만여 명이나 되었으므로, 위만은 먼저 이들을 통치했으며, 이들을 기반으로 하여 서서히 그 세력을 다져 갔다. 준은 위만을 매우 신뢰하고 총애했지만, 위만은 오히려 왕을 속이고, 그를 공격하여 그 나라를 빼앗고, 자기가 대신 왕이 되었으며, 왕검(王儉) 【지금의 평양】 을 도읍으로 삼았다. 이때 한나라는 국가가 아직 공고해지지 못했으므로, 요동 태수(遼東太守)로 하여금 조선의 왕인 위만과 외신(外臣)이 되기로 약속함으로써, 변방 밖의 만이(蠻夷)를 제압하여 변경을 어지럽히지 않도록 했다. 또한 동시에 만이의 우두머리[君長]가 한나라에 입조(入朝)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이리하여 위만은 군대와 재력을 얻어 주위의 여러 종족들을 침략하여 항복시켰는데, 진번(眞番), 임둔(臨屯)은 모두 그에게 복속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조선반도의 북반부를 거의 통치하게 되었으며, 전해지기로는 그의 손자인 우거(右渠)에 이르러 유인해내어 한나라의 망명자들이 점차 많아졌으므로, 당시 조선왕의 치하에 한인(漢人)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없다. 우거는 이처럼 많은 한인(漢人)들을 유치(誘致)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그때까지도 한나라에 입조(入朝)하지 않았으며, 또한 주변 국가들이 입조하는 것을 막았다. 한나라 무제(武帝)는 섭하(涉何)라는 사람을 사신으로 파견하여 우거를 타일렀지만, 우거는 무제의 조서를 받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섭하를 살해했다. 무제는 분노하여 수군과 육군을 보내 조선을 쳐서 멸망시켰으며, 그 땅에 사군(四郡)을 설치했다. 이때가 한나라 원봉(元封) 3년이자, 우리의 가이카(開化) 천황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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