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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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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종족(韓種族)

한족(韓族)의 상태는 『위지(魏志)』에 처음으로 상세히 기록되었다. 이 책의 「동이전(東夷傳)」에 따르면, 한(韓)은 대방군의 남쪽에 있었다. 동서(東西)는 바다에 닿아 있고, 남쪽은 왜(倭)와 접하고 있다. 사방이 천(千) 리(里) 정도이다. 세 종족이 있는데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卞韓)이라고 한다. 이들 삼한(三韓)은 각각 수많은 나라들로 나뉘어져 있는데, 마한은 50여 개 나라, 진한과 변한은 각각 12개 나라들로 되어 있다. 합쳐서 70여 개 나라로 되어 있으며, 이 밖에도 또한 여러 작은 읍(邑)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삼한은 아직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했으면서도, 마한에는 한왕(韓王)이 있고, 진한에는 진왕(辰王)이 있으며, 변한에도 역시 왕이 있어 이들을 다스린다고 하므로, 각 왕들은 이들 여러 나라들의 맹주가 되었다.

삼한 가운데 진한은 토지가 비옥하여 곡식이 자라기에 적합하고, 그곳 사람들은 잠업(蠶業)을 하며 비단을 짜고 우마(牛馬)를 탔다. 결혼 등에 대한 예절이 있었고 아이가 태어나면 돌로 그 머리를 눌러 납작하게 하는 기이한 풍습이 있었다. 문신(文身)의 풍습이 지방에 따라 행해졌다. 국내에서 철(鐵)을 생산하고 한(韓), 왜(倭), 예(濊)는 모두 따라서 이를 취했으며, 시장에서 거래할 때 철로 만든 돈을 사용했던 것 같다. 도읍에는 성책(城柵)을 설치했다. 변한은 진한과 섞여 살았으며, 도읍에 성곽이 있었다. 의복과 주거지는 진한과 같았으며, 언어와 법속(法俗)도 비슷했다. 마한은 도읍에 성곽은 없었고, 토지가 비옥하고, 그 백성들은 농경과 잠업을 할 줄 알며, 면포(綿布)를 짰지만, 우마를 탈 줄은 몰랐다. 마한 사람들은 성격이 강하고 용맹했으며, 일반적인 풍속도 거칠고 세련되지 못했다. 남자들이 왕왕 문신을 하는 풍습은 진한과도 유사했지만, 언어는 진한과 달랐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같은 한족들 가운데 진한과 변한은 거의 서로 유사했으며, 마한과 진한 두 나라는 서로 다른 점이 많았다. 진한 사람들은 원래 진(秦)나라의 전쟁을 피해서 들어온 사람들인데 마한은 그 동쪽 경계 지역을 할애해 주어 살게 진한 사람을 했다는 전설이 일찍부터 전해져 오는 것을 보아, 마한과 진한이 서로 다른 점이 많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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