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노히보코(天日槍)가 돌아온 것은 『일본서기』의 「스이닌(垂仁) 천황 3년 봄 3월의 항목 주기(註記)에 기록되어 있다. 다음과 같다.
처음에 아메노히보코(天日槍)가 배에 타고 하리마국(播磨國)에 정박했다. 시사하읍(肉粟邑)에 있을 때, 천황 미와노키미(三輪君)가 조(祖)인 오호토모누시(大友主)와 야마토노아타이(倭直)의 조(祖)인 나가나이치(長尾市)를 하리마노에 보내, 아메노히보코에게 “너는 누구이며, 또 어느 나라 사람인가?”라고 물었다. 아메노히보코가 대답하기를, “저는 신라국 군주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일본국에 성황(聖皇)이 계신다는 말을 듣고, 곧 제가 나라를 동생인 지고(知古)에게 주고 귀화해 왔습니다.”라고 했다. 【중략】 이때 아메노히보코가 아뢰기를, “만약 천은(天恩)을 내리셔서 신이 진정 원하는 땅을 신(臣)이 살 곳으로 주신다면, 신이 직접 여러 나라들을 돌아보고, 곧 신이 마음에 드는 곳을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했다. 이에 그 말을 들어주셨다. 그리하여 아메노히보코는 우지(菟道) 강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북쪽 오미국(近江國)의 아나읍(吾名邑)에 들어가 잠시 살았다. 다시 오미국으로부터 와카사국(若狹國)을 거쳐 서쪽의 다지마국(但馬國)에 도착하여, 곧 살 곳을 정했다. 이리하여 오미국의 경곡도(鏡谷陶)라는 사람은 아메노히보코의 종인(從人)이 되었다. 그 아메노히보코는 다지마국 이즈시(出石) 사람인 후도미미(太耳)의 딸인 마타오(麻多烏)를 아내로 맞아 다지마국의 찌로쓰히(諸助)를 낳았다. 찌로쓰히는 다지마의 히나라키(日楢杵)를 낳았다. 히나라키는 기요히코(淸彦)를 낳았다. 기요히코는 다지마모리(田道間守)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