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일제강점기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1
  • 2. 삼한(三韓)
  • 비고(備考)
  • 고구려국 시조 전설

고구려국 시조 전설

고구려국의 시조 주몽(朱蒙)의 전설은 『삼국사기』와 더불어 광개토왕비문에 근거하면 다음과 같다.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는, 스스로 천제(天帝)의 아들이라고 하는 사람과 사통(私通)했다. 부여왕(扶餘王) 금와(金蛙)는 유화를 얻어 한 방 속에 유폐시켰는데, 햇빛을 받고 하나의 알을 낳았다. 그 알에서 한 사내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다. 그 골격과 외모가 빼어나고 기이한 것이 보통 아이들과 달랐다. 어려서 스스로 화살을 만들어 그것을 쏘면 백발백중이었다. 부여 사람들은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주몽(朱蒙)이라고 했다. 따라서 그것이 이름이 되었다. 금와는 아들이 일곱 명 있었다. 항상 주몽과 놀이를 했는데, 그 기예의 솜씨는 모두 주몽에 미치지 못했다. 장자(長子)인 대소(帶素)가 왕에게 말하기를, “주몽은 사람이 낳은 것이 아닙니다. 그가 사람이 되자 용감해졌습니다. 만약 일찍이 일을 도모하지 않는다면, 필시 후환이 있을 것입니다. 청컨대 그를 제거하십시오.”라고 했다. 왕자와 여러 신하들도 그를 죽이려고 모의했다. 주몽의 어머니는 몰래 그것을 알아채고 주몽에게 알려 주었다. 이에 주몽은 그의 친구 세 명과 나라를 도망쳐, 엄체수(淹遞水)를 건너려고 했는데 다리가 없었다. 주몽은 물을 향하여 말하기를, “나는 이곳 천제(天帝)의 아들이자, 하백(河伯)의 외손자이다. 나를 위해 다리를 놓아라.”라고 했다. 이때 물고기와 자라들이 그 소리에 응하여 떠올라와 다리를 놓으니, 건널 수 있었다. 주몽은 이 기적으로 다행히 뒤쫓던 기병들에게 붙잡히는 것을 면했으며, 마침내 졸본천(卒本川) 유역에 이르러 나라를 세웠다. 나라를 고구려(高句麗)라고 불렀으며, ‘고(高)’를 성씨로 삼았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