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고구려보다 늦어 일본에 복속될 무렵까지는 아직 문자로 기록한 적이 없었는데, 고흥(高興)이라는 박사를 얻고 나서야 비로소 기록이 시작되었다. 또 그 무렵 백제는 왕인(王仁)이라는 학자를 일본에 보냈는데 이때 백제의 왕은 『논어(論語)』와 『천자문(千字文)』을 일본의 조정에 헌상(獻上)했다. 이것이 일본에 한학(漢學)이 전래된 시초인데, 즉 오진(應神) 천황 【제15대】 시대였다. 천황은 왕인 등에게 명하여 기록을 관장하도록 하셨다. 왕인의 조상은 중국인으로, 조부(祖父) 때부터 백제에 들어와 살았다. 고흥은 어디 사람인지 분명치 않지만, 그도 아마 중국에서 온 사람인 듯하다.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에 비해 중국과 훨씬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문학의 전래도 역시 두 나라보다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