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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 이전의 고구려

고구려의 영토는 만주에 있었기 때문에 항상 중국의 영향을 자주 받았는데, 중국의 삼국시대에는 위(魏)나라 장수 관구검(毋丘儉)에게 토벌을 당했다. 이때가 동천왕(東川王) 【제19대】 20년이다. 이때 관구검이 공격하여 고구려의 수도인 환도성(丸都城)을 함락하고 그곳을 도륙하자, 왕은 도망쳐 북옥저(北沃沮) 【지금의 함경북도】 로 달아났지만, 오래지 않아 나라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 일은 바로 오진(應神) 천황 시대에 해당한다. 그 후 약 50년이 지나, 중국은 서진(西晉) 말기에 이르렀는데, 이른바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의 난이 일어나, 여러 오랑캐족들이 번갈아 가며 일어나 나라를 세우자, 고구려는 중국의 위력이 쇠약해진 틈을 타 그 군령(郡領)을 잠식했다. 미천왕(美川王) 【제15대】 때에는 조선의 북부에 있던 낙랑군(樂浪郡)은 이미 고구려의 소유가 되었고, 점차 남하하는 추세를 보였다. 그런데 고구려는 중국 북쪽에서 일어난 연(燕)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차례 연나라의 침략을 받았다. 고국원왕(故國原王) 【제16대】 12년에는 환도성이 다시 파괴되고, 왕은 산골짜기로 도망쳤고, 그의 아버지인 미천왕의 시신과 함께 그의 생모(生母)는 적에게 잡혀 가는 재난을 당했다. 고국원왕 때는 고구려가 외환(外患)으로 가장 고통을 받던 때로, 그 왕 41년에는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이 평양을 공격하여, 고구려의 왕이 나가 이를 막았지만 화살에 맞아 사망했다. 이상은 바로 닌토쿠(仁德) 천황 시대에 해당한다. 【2. 삼한(三韓)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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