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文武王) 8년에 고구려가 당나라에 멸망한 후, 보장왕(寶藏王)의 일족이 스스로 일어나 국가를 회복하려고 몰래 신라에 들어가자, 문무왕이 이를 받아들이고 토지 【금마저(金馬渚), 훗날의 금마군(金馬郡)으로 현재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이다.】 를 주고 호의적으로 대우했다. 더구나 왕은 군대를 보내 백제의 옛 땅을 잠식했기 때문에, 당나라 황제(고종)는 크게 노하여 신라를 정벌했다. 이로 인해 당나라와 신라의 교전(交戰)은 문무왕 16년까지 역사에서 보인다. 때문에 이 왕 17년 무렵부터는 신라가 사실상 반도에 있는 당나라의 영토를 점유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당나라가 공공연하게 이를 인정한 것은 그로부터 약 60여 년 후로, 성덕왕(聖德王) 【제33대】 34년, 당나라가 칙령을 내려 신라에 패강(浿江) 이남의 땅을 준 때이다. 이때 신라의 통일 과업은 명실공히 완성될 수 있었다. 확실히 당나라는 나라의 형세가 이미 기울었고, 또한 만주에서 발해국(渤海國)이 건국되었으므로, 남쪽에서 신라가 발해를 제어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