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고운(孤雲)이며, 신라 말기 사람이다. 당나라에 유학하여 진사(進士) 시험에 급제했다. 마침 황소(黃巢)의 난이 일어나자, 최치원은 당나라 장수 고병(高騈)의 종사(從事)가 되어 토벌에 따라나섰는데, 그가 격문(檄文)을 써서 글을 잘 쓰기로 그곳에서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헌강왕(憲康王) 【제49대】 때 동쪽으로 돌아와서 왕의 시독(侍讀)이 되었으며, 재학(才學), 문장(文章)은 남들보다 뛰어났지만 뜻을 펴지 못했다. 마침내 벼슬에 대한 뜻을 포기했으며 후에 가야산 해인사에 은거하다 생을 마쳤다. 그의 저서는 매우 많다. 최치원은 스가와라 미치자네(菅原道眞)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