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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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1
  • 9. 고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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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金)나라

금나라는 곧 여진족이 세운 나라이다. 여진 완안부(完顔部)의 추장인 우고나이(烏古迺)라는 사람이 모든 부(部)를 통일하여, 거란으로부터 절도사(節度使)에 봉해졌다. 그의 아들 헤리보(劾里鉢), 포라슈(頗刺淑), 영가(盈哥) 및 헤리보의 아들 우야소(鳥雅束)는 연달아 직위를 세습하면서 점차 강대한 기반을 다졌다. 우야소의 동생 아골타(阿骨打)가 즉위하여, 요나라의 세력이 쇠약해진 기회를 틈타, 마침내 스스로 일어서 황제로 칭하고, 도읍을 회령(會寧) 【하얼빈의 남쪽】 에 정했으며, 국명을 금(金)이라고 했다. 【도바(鳥羽) 천황 시대, 고려 예종 10년】 그를 금나라 태조(太祖)라고 한다. 이때 요나라는 천조제(天祚帝)가 재위하고 있었는데, 금나라를 친히 정벌하려다 오히려 크게 패배했다. 이어서 금나라 태종(太宗)은 송나라의 요청을 받아들여 남북 양쪽에서 요나라를 협공하여 멸망시켰다. 【고려 인종(仁宗) 3년】

요나라의 멸망은 대부분 금나라 군대의 힘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금나라 태종은 송나라를 매우 가볍게 여기고, 그 허약한 틈을 노려 수도 개봉(開封)을 함락시켰으며, 휘종(徽宗)과 흠종(欽宗) 두 황제를 사로잡아 북쪽으로 돌아갔다. 송나라는 세력이 위축되어 남쪽으로 내려갔으며, 도읍을 임안(臨安) 【절강성(浙江省) 항주부(杭州府)】 으로 옮겼다. 그것을 남송(南宋)이라고 한다. 송나라는 국력이 더욱 쇠약해져 금나라와 싸울 때마다 크게 패하자, 많은 세공(歲貢)을 바치고 화의를 요청했으며, 마침내 금나라의 봉책(封冊)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금나라는 발해와 요나라의 옛 영토를 점유했으며, 계속 남하하여 거의 중국 본토의 북반부를 차지하여, 송나라와 회수(淮水)를 경계로 삼게 되었다. 태조의 손자 치쿠나이(廸克乃)는 도읍을 연경(燕京) 【지금의 북경(北京)】 으로 옮기고, 단번에 송나라를 합병시키려고 친히 대군을 이끌고 남쪽 원정에 나섰지만, 오히려 송나라 군대에 패하여 군대를 철수했는데 도중에 살해되었다. 세종(世宗)이 이어서 즉위하여 송나라와 화친을 맺고 오로지 내치(內治)에 전념했지만, 금나라는 이 무렵부터 국력이 점차 쇠약해졌다. 그 후 오래지 않아 중국 북쪽에 강대한 몽고(蒙古)가 일어났는데, 마침내 그에 의해 멸망했다. 【시죠(四條) 천황 시대, 고려 고종(高宗) 21년】 금나라는 나라를 유지한 것이 모두 10황제 12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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