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일제강점기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1
  • 9. 고려 2
  • 비고(備考)
  • 최씨(崔氏)의 전횡

최씨(崔氏)의 전횡

의종(毅宗) 【제18대】 때, 무관파(武官派)의 우두머리인 정중부(鄭仲夫)는 문관(文官)의 횡포에 분노하여 대학살을 자행했으며, 왕을 폐위하고 명종(明宗) 【제19대】 을 즉위시켰다. 이로 인해 문관과 무관의 알력은 점점 심해졌으며 또 무신들 사이에서도 서로 반목하여 분쟁이 항상 끊이지 않았는데, 최충헌(崔忠獻)은 일거에 권신(權臣)인 이의민(李義旼) 일족을 살육하여 그를 대신했다. 최충헌은 새로 왕의 동생을 신종(神宗) 【제20대】 에 옹립하고, 병사들을 사저(私邸)에 주둔하게 하여 변고에 대비했으며, 정령(政令)은 모두 그에게서 나왔다. 그는 병권(兵權)과 정권(政權)을 모두 잡고, 자손들에게 그 직책을 세습한 것이 마치 우리나라[일본]의 장군(將軍) 직책과 같았다. 그것을 영공(令公)이라고 불렀다. 신종이 세상을 떠나고 희종(熙宗) 【제21대】 이 즉위했다. 내시 왕준명(王濬明) 등은 왕이 최충헌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승병(僧兵)과 몰래 연락을 취하여 최충헌을 살해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최충헌은 크게 노하여 왕을 폐위하고 강화도로 축출했으며, 명종의 아들을 강종(康宗) 【제22대】 으로 맞이했다. 왕이 재위한 지 고작 2년 만에 세상을 떠나자, 최충헌은 고종(高宗) 【제23대】 을 즉위시켰다. 최충헌이 죽고 최이(崔怡) 【처음 이름은 우(瑀)였다.】 가 그의 뒤를 이었는데, 아버지의 폭정을 매우 많이 개혁했다. 이때 몽고 군대가 침입해 왔으므로, 이 왕 19년에 최이는 왕을 호위하여 강화도로 난을 피했다. 최이의 아들 최항(崔沆)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정권을 잡고, 만약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서슴지 않고 죽였다. 최항이 죽고 그의 아들 최의(崔竩)가 뒤를 이었는데, 나이가 어리고 우둔했으므로, 이 틈을 타 대사성(大司成) 유경(柳璥)과 도령낭장(都領郎將) 임연(林衍) 등이 최의를 살해했다. 최충헌이 무인의 말단 지위에서부터 능력을 발휘하여 국정을 전횡하고부터 여기에 이르기까지 4대 60여 년이 지나 최씨는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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