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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와의 국경

고종(高宗) 【제23대】 21년에 몽고가 금나라를 멸망시키자 그 땅은 모두 몽고가 차지하였다. 같은 왕 45년에 몽고가 장병들을 거느리고 와서 화주(和州) 【영흥(永興)】 땅에 주둔했다. 이때 용진(龍津) 사람인 조휘(趙暉)와 정주 사람인 탁청(卓靑) 등이 함께 반란을 일으켜 화주 부사(副使) 등을 살해하고, 화주 이북의 땅을 몽고에 종속시켰다. 이에 몽고는 화주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설치하고, 조휘를 총관(總管)으로 임명했으며, 탁청을 천호(千戶)로 삼아 자손이 각자 그 직위를 세습하게 했다. 이리하여 고려의 동북(東北) 국경은 금나라 시대에 비해 조금 밀려났다. 그 후 12년이 지나 원종(元宗) 【제24대】 10년에 임연(林衍)이라는 자가 극도로 흉포하여 왕을 폐위하고 왕의 동생인 우(瑀)를 옹립하여 정권을 농단했으므로, 같은 해에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의 관리인 최탄(崔坦)이라는 사람이 임연을 살해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일으켰다. 서북의 여러 주(州)에는 그에 호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최탄은 서경(西京) 【평양】 유수(留守)와 그 밖의 여러 주의 수령들을 살해하고, 이듬해에 몽고에 복속하고 군대를 요청했다. 몽고는 이에 응하여 서경을 동녕부(東寧府)라고 고쳐 부르고, 자비령(慈悲嶺)을 고려와의 경계로 삼고, 최탄을 총관으로 삼았다. 자비령은 대동강 유역의 남쪽에 있으며 황해도에 속했다. 그 후 최탄은 죄를 지어, 충렬왕(忠烈王) 【제25대】 16년에, 원나라는 동녕부를 폐지하고, 서북의 모든 성들을 돌려주었다. 때문에 자비성 이북의 땅은 원나라에 속한 지 20년 만에 고려에 돌아올 수 있었다. 공민왕(恭愍王) 【제31대】 5년에 원나라가 쇠퇴한 것을 틈타, 유인우(柳仁雨)에게 명하여, 군대를 이끌고 쌍성총관부를 공격했다. 유인우는 이자춘(李子春) 【이성계의 아버지】 의 은밀한 도움으로 그곳을 함락시킬 수 있었으므로, 고려는 이에 원나라에 표(表)를 올려, 정식으로 그 점령을 승인해 주도록 요구했다. 화주(和州)를 원나라의 치하에 빼앗긴 후 이때까지 99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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