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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李成桂) 및 그의 조상

이성계의 조상은 원래 전주(全州)에서 살다가 신라의 신하로 지냈지만, 후에 까닭이 있어 함경도로 이주했다. 때문에 원나라가 함경도 지방을 차지할 무렵에는 원나라를 섬겨 그곳의 지방관이 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공민왕 때에는 원나라가 크게 쇠약해지자, 왕은 공공연히 원나라에 반대하는 태도를 취하여, 이 왕 5년에는 그때까지 사용하던 원나라의 연호를 중단했을 뿐만 아니라, 같은 해에 장수를 파견하여 영흥(永興)의 원나라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공격했다. 【쌍성총관부에 관해서는 이 책 고려 2 비고 7 「고려의 영토」 참조】 이때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李子春) 【후에 추존하여 환조(桓祖)라고 했다.】 은 영흥에 있었는데, 왕명을 받들어 몰래 고려군을 도와, 쉽게 성을 함락할 수 있도록 했다. 이자춘은 후에 그 공으로 이 방면의 지방관 【삭방도(朔方道) 만호(萬戶) 겸 병마사(兵馬使)】 에 임명되어, 함흥(咸興)에 있으면서 고려의 국경을 안정시켰다. 이것이 이씨가 드러나는 시작이다. 그 후 이성계는 아버지의 직위를 이어받아 오랫동안 이 방면에서 재임했지만, 당시 함경도의 북부에는 여진족(女眞族)이 대단히 많이 살고 있어, 반역과 복종이 항상 일어났으므로, 늘 그것을 안정시키고 위무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또한 여러 차례 그 지방들에서 왜구를 방어하고 그들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다. 이리하여 이름이 크게 알려졌으며 마침내 국정(國政)에 참여하는 데까지 오르게 되었다.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당시 고려는 나라의 운명이 매우 곤란한 처지여서, 때로는 원나라와 친했고 때로는 명나라와 친하여 그 방침이 일정하지 않았지만, 이성계는 처음부터 명나라와 친하게 지낸다는 방침을 취하고 점차 세력을 획득했으며, 마침내 마지막 왕인 공양왕(恭讓王) 【제32대】 을 추대하여 옹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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