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일제강점기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1
  • 11. 고려 4
  • 비고(備考)
  • 변경의 침입

변경의 침입

신라가 삼한(三韓) 통일 후에도 일본에게 조공(朝貢)했다는 것은, 나라(奈良) 시대 말기에 이르기까지 국사(國史)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헤이안(平安) 시대에 들어서는 조공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변방 백성들이 배를 타고 와서 이키(壹岐), 쓰시마(對馬)와 더불어 규슈(九州) 등에 출몰하여, 일본의 연안 지방들을 노략질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그에 대해 방비를 매우 삼엄하게 했는데, 고려 시대가 되자 이들 변방에 대한 침입은 매우 드물어졌다. 그런데 호조씨(北條氏) 바후쿠[幕府]가 실권을 장악할 무렵부터, 일본 변경 바다의 백성들이 배를 타고 조선 연해에 출몰하는 일이 있게 되자, 고종(高宗) 때 【같은 왕 10년】 왜구(倭寇)라는 말이 처음으로 『고려사(高麗史)』에 보인다. 이 무렵은 단지 일본인뿐만 아니라 송나라 사람들도 많이 무역을 주로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협박하여 빼앗는 경우도 있었다. 그 후 원나라가 고려와 함께 일본을 침략했다. 【겐코[元寇]를 말한다.】 이때부터 왜구의 성질은 눈에 띄게 악화되어, 고려 및 원나라의 해안에 이르는 곳은 피해를 입었으며, 고려에서는 폐왕(廢王) 우(禑) 시대에 그 피해가 가장 심했다. 고려의 나흥유(羅興儒), 정몽주(鄭夢周) 같은 학자들이 사신으로 와서 침략을 금지해 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 왕 때이다. 그런데 이 무렵의 왜구에는 조선인이 들어간 경우도 있었다. 일본에서는 바쿠후[幕府]와 더불어 규슈의 탐제(探題)도 모두 그 요청에 대해 크게 호의를 나타내어 침입을 금지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쉽게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이씨 조선 초기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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