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일제강점기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2
  • 1. 조선의 태조(太祖)
  • 비고(備考)
  • 이조(李朝)의 조상들

이조(李朝)의 조상들

제1대 휘(諱) 한(翰) 신라에서 벼슬을 하여 사공(司空)이 되었다.

제2대 휘 자연(自延)

제3대 휘 천상(天祥)

제4대 휘 광희(光禧)

제5대 휘 입전(立全)

제6대 휘 긍휴(兢休) 처음으로 고려에서 벼슬을 하였다.

제7대 휘 염순(廉順)

제8대 휘 승삭(承朔)

제9대 휘 충경(充慶)

제10대 휘 경영(景英)

제11대 휘 충민(忠敏)

제12대 휘 화(華)

제13대 휘 진유(珍有)

제14대 휘 궁진(宮進)

제15대 휘 용부(勇夫)

제16대 휘 인(璘)

제17대 휘 양무(陽茂)

제18대 목조(穆祖) 휘 안사(安社) 처음으로 원나라에서 벼슬을 하였다.

제19대 익조(翼祖) 휘 행리(行里)

제20대 도조(度祖) 휘 춘(椿)

제21대 환조(桓祖) 휘 자춘(子春) 다시 고려에서 벼슬을 하였다.

제22대 태조(太祖) 휘 성계(成桂)

태조의 선조는 전주(全州)에서 출발하여, 시조(始祖) 이한(李翰)은 신라에서 사공(司空)이 되었다. 그로부터 자손들이 이어져, 제17대 양무(陽茂)에 이르기까지의 사이는, 제6대 긍휴(兢休)가 처음으로 고려에서 벼슬을 한 것 외에는 그 사적(事蹟)이 전해지지 않는다. 18대 목조(穆祖)는 휘(諱)가 안사(安社)로, 역시 일찍이 고려에서 벼슬을 하였으며, 의주(宜州) 【지금의 덕원(德源)이라고 한다.】 지사(知事)가 되어 선정을 펼쳤다. 후에 강릉부(江陵府)의 삼척현(三陟縣) 【강원도】 으로 이주하였는데, 그러는 동안에 또한 원나라에서 벼슬을 하여, 남경(南京) 【간도(間島) 국자가(局子街) 부근】 에서 5천 호(五千戶)가 소속된 다루가치(達魯花赤) 【원나라 지방 관직명】 가 되었다.

목조의 아들 익조(翼祖)는 휘가 행리(行里)로, 역시 남경에서 천호(千戶)에 봉해졌지만, 여진(女眞)의 박해를 피해 두만강을 따라 내려와, 마침내 적도(赤嶋) 【함경북도】 로 들어왔으며, 후에 덕원부(德源府) 【함경남도】 로 돌아왔다. 익조의 아들은 휘가 춘(椿)으로, 원나라에서 벼슬을 하여, 아버지의 직책을 물려받았다. 그를 도조(度祖)라고 한다.

도조의 둘째 아들 자춘(子春)은 아버지의 직책을 물려받아, 역시 천호가 되었으며, 쌍성(雙城) 【함경남도 영흥】 땅에서 살았다. 후에 원나라가 쇠약해지자, 공민왕 4년에 처음으로 알현하였는데, 이듬해에 고려로부터 소부윤(少府尹)을 하사받았다. 같은 해에 고려 장수 유인우(柳仁雨)가 군대를 이끌고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공격하자, 자춘은 그와 내통하여 총관부를 함락시켰으며, 마침내 함주(咸州) 이북의 땅을 수복하였다. 9년에, 삭방도(朔方道) 【훗날의 함경도】 만호(萬戶) 겸 병마사(兵馬使)에 임명되어 동북 국경을 진무하였지만, 4월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이때 나이 46세였다. 그가 곧 환조(桓祖)로서, 실로 태조(太祖)의 아버지이다. 【『고려사(高麗史)』·『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정릉비문(定陵碑文)」】

태조 이성계는 아버지에 이어 동북면(東北面)의 상만호(上萬戶)가 되어 국경의 여진족을 진압하고 공을 세우고, 화령 부윤(和寧府尹) 【함경남도 영흥】 이 되었으며, 또한 여러 차례 왜구를 토벌하고 그들을 격파하여 시중(侍中)으로 승진하였으며, 마침내 고려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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