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가 즉위한 것은 임신년(壬申年) 【일본 고고마쓰(後小松) 천황 겐추(元中) 9년, 명나라 태조 홍무(洪武) 25년】 7월 17일로, 곧바로 조반(趙胖)을 명나라 조정에 파견하였고, 이어서 또한 조림(趙琳)을 보내, 표(表)를 올려, 왕씨가 무도(無道)하였으므로, 백관(百官)과 더불어 인민들의 추대(推戴)에 의해 대신 통치의 임무를 맡게 되었음을 고하고, 그것을 승인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명나라는 9월 12일에 그것을 허락하였지만, 아직 왕호(王號)를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국내에서는 왕이라고 칭하였지만, 명나라에 대해서는 권지국사(權知國事)라고 칭하였다. 명나라 황제가 마침내 고명(誥命)으로써 권지국사를 봉하여 조선 국왕으로 삼고, 금인(金印)을 내린 것은 태종 원년 【개국 후 10년, 명나라 혜제(惠帝) 건문(建文) 3년】 이다. 【『태조실록(太祖實錄)』·『태종실록(太宗實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