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일제강점기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2
  • 1. 조선의 태조(太祖)
  • 비고(備考)
  • 태조의 왕자들과 정릉(貞陵)
  • 방간의 난

방간의 난

넷째 아들 방간은 방원의 영민함을 시기하였다. 마침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박포(朴苞)가 벼슬이 낮은 것에 불만을 가졌다. 정종 2년에, 박포는 마침내 방간을 꾀어, 병사들을 이끌고 방원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그의 병사들은 패하고, 박포는 죽임을 당하였으며, 방간은 유배에 처해졌다. 이를 ‘방간의 난’이라고 부른다.

계비 강씨는 정도전의 난이 일어나기 전, 태조 5년에 세상을 떠났다. 태조는 그를 깊이 애도하여 시호를 신덕왕후(神德王后)라고 하였으며, 관련 기관에 명하여 도성 안의 황화방(皇華坊) 북원(北原) 【지금의 경성 정동(貞洞) 영국 총영사관의 위치】 정릉(貞陵)에 매장하였으며, 또한 능의 동쪽에 흥천사(興天寺)를 지어 그의 명복을 빌었다. 그러나 태종 방원이 왕위에 즉위하고, 8년 5월에 태상왕(太上王) 【태조】 이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에 정릉을 성 밖의 양주(楊州)로 옮기고, 이후 신덕왕후에 관한 전례(典禮)는 일절 살피지 않아 그 능묘도 역시 완전히 황폐화되게 방치하였다. 그 후 250년이 지나 현종(顯宗) 【제18대】 때에 이르러 비로소 그 능묘를 고쳐 만들고, 신덕왕후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태조묘(太祖廟)에 함께 제사 지냈다. 정릉은 지금의 양주군 남쪽 사하리(沙河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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