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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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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鄭道傳)

자는 종지(宗之)이고 호는 삼봉(三峰)이다. 경상북도 봉화(奉化)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여 정몽주, 이숭인(李崇仁) 등과 함께 이색(李穡)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공민왕 11년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여 성균관 사예(司藝), 예문관 응교(應敎)에 임명되었다. 폐왕 우(禑) 초기에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지만 다시 기용되어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을 역임하고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었다. 이성계와 함께 공양왕을 옹위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때 시중 정몽주 등은 이성계의 위세와 명망이 나날이 왕성해지는 것을 꺼려하여, 먼저 그를 보좌하는 정도전 등을 제거한 다음, 이성계를 도모하려고 하였다. 이로 인해 정몽주의 일당에 의해 탁핵되어 먼 곳으로 유배되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정몽주가 살해되자, 그는 남은, 조준 등과 함께 이성계를 추대하여 즉위시켰다. 태조는 정도전의 공을 평가하여 봉화백(奉化伯)에 봉하고, 이어서 발탁하여 정승을 삼았다. 3년에 명을 받고 한양을 살펴보고 새로운 도읍을 정하였다. 궁전의 여러 문(門)들과 시가지의 거리 이름은 모두 그가 명명한 것이라고 한다. 무릇 이씨 개국의 규모 있는 시설들은 대체로 그의 손에서 나왔다. 태조는 어느 날 밤 여러 신하들을 불러 주연을 성대히 베풀었는데, 술이 얼큰하게 취하여 정도전을 바라보면서 말하기를, “과인(寡人)이 여기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경(卿)이 힘을 썼기 때문이오.”라고 하였다. 그가 얼마나 태조에게 신임을 얻었는지를 알 수 있다. 태조는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다. 계비(繼妃)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康氏)】 가 낳은 막내아들 방석(芳碩)이 세자에 옹립되자, 정도전은 후에 혼란이 일어날 것을 염려하여, 남은(南誾) 등과 모의하여, 태조가 병이 났다는 핑계를 대고 여러 왕자들을 불러 모아, 일거에 그들을 제거하려고 하였지만, 계략이 탄로나 오히려 방원(芳遠)에게 살해되었다. 저서가 여러 가지 있지만, 『삼봉집(三峰集)』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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