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일제강점기
  •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 2
  • 1. 조선의 태조(太祖)
  • 비고(備考)
  • 이씨 개국의 공신들
  • 남은(南誾)

남은(南誾)

의령(宜寧) 【경상남도】 사람이다. 성격이 호방하여 사소한 일에는 구애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기묘한 꾀를 잘 부렸다. 폐왕 우(禑) 때, 해구(海寇)가 여러 차례 삼척군(三陟郡) 【강원도】 에 와서 약탈을 자행하였다. 남은은 스스로 청하여 그곳에 가서 해구를 크게 무찔렀다. 이 왕 14년에 요동(遼東) 원정에 나섰다. 이성계는 대군의 장수로서 진격하여 압록강 중류의 위화도(威化島)에 주둔하였다. 남은은 곧 조인옥(趙仁沃) 등과 모의하여, 이성계에게 권유하여 요동 공격은 불가하다고 하였다. 이성계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마침내 군대를 회군하였다. 이때부터 이씨를 돕는 사람들과 이씨를 제거하려는 사람들은 두 파벌로 나뉘어 서로 다투어 분란이 극에 달하였지만, 남은은 몰래 이씨를 추대하려고 이성계의 아들 방원 【 태종】 에게 그 뜻을 알렸다. 방원이 말하기를, “이것은 대사(大事)입니다. 가볍게 입 밖에 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공양왕 4년에 정몽주 등은 대간(臺諫)을 부추겨서 이씨 무리를 보좌하는 조준, 정도전 등을 탄핵하였다. 남은도 역시 관작을 삭탈당하여 먼 곳으로 유배되었지만, 정몽주가 횡사함으로써 다시 도성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남은은 조인옥, 정도전 등과 서로 모의하여, 이성계를 추대하여 즉위하도록 하였다. 공(功)을 세움에 따라 개국 일등공신에 올라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제수하였다. 태조는 일찍이 “만약 남은, 조인옥이 없었다면 어찌 대업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라고 말하였다. 태조 7년에 남은은 정도전 등과 모의하여 세자 방석을 위해 여러 왕자들을 제거하려 하였지만, 그 사실이 누설되어 오히려 방원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세종 때, 남은이 개국에 큰 공을 세운 것을 생각하여 그 죄를 용서하였으며, 강무(剛武)라는 시호를 내리고 태조의 묘정에 향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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